어쩌면, 내가 느끼고 싶은 건 바로 그 온기일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사랑이라는 걸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내 주변엔 든든한 울타리도,
나를 지켜주는 어른도 없었다.
아파도, 배가 고파도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 했다.
그 시절의 기억엔
따뜻한 장면보다 공백이 더 많다.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숨 막히게 싫었다.
사춘기 때문이었는지,
정서적 결핍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삶에 딸린 부속품’처럼 살아간다는 감각 속에서
삶은 점점 엉켜 갔다.
분노와 원망은 쌓였고,
그 감정들을 다룰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나는 스스로를 더 어두운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전문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나를 회복시키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런 다짐 하나가 내 안에 남았다.
남은 인생만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면
곱게 살아가 보자고.
그날 이후
나는 나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조금 단단해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과거의 내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런 ‘온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나와 같은 깊이의 감각과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고요는 외로움이라기보다
공명이 닿지 않는 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알고 있다.
이 시간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남은 생은 이전보다 더 찬란하게 빛날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예감이 든다.
현시대의 어른으로서,
나의 작은 온기로
세상에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다 눈 감을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지금,
이 삶을 계속 선택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