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마음을 청소하는 과정

by 유리담

경도에 따라 강도는 다르다.
특히 원인조차 모를 일방적 이별은
비참함을 넘어 나를 자학하게 만든다.

오만가지 감정의 찌꺼기들이
마음과 뇌를 헤집고 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더 가관인 건, 그런 나를 내가 다시 상처 준다는 거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게 과연 있을까?
미성숙했던 시절엔 너무 아파서
그 상처들이 마음 곳곳에 박혔다.
시간이 지나 조금 성숙해진 지금도
그 강도는 달라졌을 뿐, 이별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늘 진심으로 살았다.
심지어 못된 마음을 먹은 순간조차 진심이었다.
“내가 감당하면 되지.”
그 말로 나를 내팽개치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야.”라며
타인의 감정까지 흡수해 내 안에서 소화시켰다.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의문이 함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 나는 그 아픔들을
자양분으로 삼아왔다는 걸.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점점 더 유연해지고,
아픔의 강도는 약해지고,
회복은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

결국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다.
이별의 상흔들을 너무 깊이 저장하지 말자.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 안에 머물지만 않으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죽을 것 같은 아픔도,
사는 사람은 결국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긍정이라는 프레임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암울하기보다 빛나게 사는 편이 낫다.
그래야 먼저 간 생명들에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내가 저승 친구 하겠다고 따라간들,
그들이 정말 반겨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이별은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의 순환 앞에 억지를 부릴 수는 없지.
내가 원해서 태어난 세상은 아니지만,
주어진 시간만큼은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
수많은 선택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건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안 좋은 것들이 쌓여 어둠이 되더라도,
그 또한 내가 만든 세계라면
벗어나는 일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살아온 날들 중 좋은 날이 더 많았다.
단지 뇌가 부정적인 기억을 더 크게 각인시켰을 뿐이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명령하자.
“그만.”
몸을 움직여 사고를 정상 범주로 끌어올려야 한다.

모든 전문가들이 말한다.
그러나 스스로 해내는 건 쉽지 않다.
인간의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바꾸려 한다.
어쩌면 그게,
이별을 계속 반복하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만남과 이별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현명하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길 —
나는, 나 자신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