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작은 위로
나에게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열네 살이 되어가는 보리, 여덟 살인 봄이, 그리고 이제 한 살 된 호두.
보리는 회사 앞에서 구조한 아이였고,
봄이는 어머니가 돌보던 길냥이가 낳았지만 선천적 장애로 인해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호두는 추석 무렵, 눈도 뜨지 못한 채 어미가 사라진 곳에서 구조했다.
잠시 보호한 뒤 입양을 보낼까 고민했지만 결국 함께 살게 되었다.
호두는 집 전체의 에너지다.
모든 것이 놀잇감이고 세상이 신기한 나이.
문제는 오래 함께한 보리와 봄이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
큰 마찰은 없지만 불편함이 스며 있다.
위계를 잡아주길 바랐던 보리는
관절염과 빈혈로 대부분 누워 지낸다.
봄이는 호두의 지나친 활력에 자주 치이고,
그 모습을 볼 때면 ‘내 선택이 잘못된 건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한다.
보리가 내 곁에 얼마나 더 머물러줄까.
순차적으로 따지면 길어야 이삼 년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품고 잠들었던 어느 날,
묘한 꿈을 꾸었다.
어떤 동물원인지 모를 곳에서
아이들이 소풍 온 듯 율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따뜻해 눈물이 고였다.
손등을 훔치는 순간,
누군가가 내 손을 살짝 핥았다.
고개를 돌리니
신비하게 생긴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나를 위로하듯 바라보았다.
놀라 잠에서 깨고 나서
‘왜 이런 꿈을 꾸었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슬픔과 책임, 애정과 두려움이 뒤섞여
꿈으로 떠오른 게 아닐까.
이른 새벽,
그 감정의 잔향이 남아
나는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을 끄적이고 있다.
순서대로 보리, 봄, 호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