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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영 Jun 11. 2021

<올리브 키터리지>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19 




특별히 나의 삶에 있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한 개인의 인생으로 본다면 좀 보잘것없고 시시한 일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종종 한다.  어떤 "성취"라는 것이 사라진 인생은 좀 그렇지 않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뭔가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좋고, 글을 쓸 수 있는 소위 글감이라는 것도 많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나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길을 가다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서도 많은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고. 단지 그것을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미국의 작가가 2008년에 발표한 이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에는 1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모든 소설에 어떤 식으로든 올리브가 등장하는데 이 여인은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키가 매우 큰 외모로 묘사되는 올리브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을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수학 선생이었고 매우 퉁명스럽고 드센 느낌에다가 상냥함이나 선량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가르쳤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 올리브를 무서워했고. 올리브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나이스 맨인 남편 약사 헨리와 아들인 크리스토퍼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있고 나머지는 이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인데 이렇게만 쓰면 뭘 또 시간을 내서 읽을 필요까지야 그런 생각이 들지만 막상 책을 드는 순간 놀랍게 몰입하게 된다. 아니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가 있나.라는 생각을 내내 하면서  그 평이한 인물들이 던지는 인생에 어떤 찰나에 대한 표현들이 너무나 깊은 의미들을 담고 있어서 읽는 동안 많이  감탄했는데,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에 대한 멋진 묘사는 덤.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내용들이 꽤 많은데 가장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은 장성한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어머니인 올리브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이었다. 사실 나는 이 올리브라는 캐릭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퉁명스러운 사람들은 친해지기도 어렵고 말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매우 많으니까. 그런데  <작은 기쁨>에서 아들의 결혼식 날 올리브가 느끼는 가슴 뻐근한 감정들을 읽으면서 뭐랄까. 좀 연민을 느꼈다고 할까. 이런 스타일의 시어머니들 정말 싫기는 하지만,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게 아니었고,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아들과는 이미 대화가 끊겨서 데면데면한 데다 며느리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복잡할 것인가. 올리브가 남편인 헨리와 우연히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이야기인 <다른 길>도 정말 좋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던 그런 단편.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부부는 인질로 잡혀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서 크게 상처받는다. 무사히 위기를 피하고 살아남았으나, 이제 이 일이 있기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걸 작가는 "서로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은 그 말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문장에 나는 밑줄을 여러 번 그어놓았다. 타인을 모욕하고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비루한 삶을 위로하는 사람을 묽은 우유라고 불렀던 <피아노 연주자>도 좋았고. 엉망이 된 내 삶을 위안하기 위해 나보다 더 형편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찾아감으로써 위로를 얻으려는 헛된 마음이 표현되는 <여행 바구니>도 꼭 읽어봤으면 하는 좋은 소설. 하지만 그 헛된 기대는 마음에 더 큰 낙심을 가져온다는 이런 세세한 심리의 묘사들이 정말 탁월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비교적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남들이 잘 모르는 지랄맞은 성격이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좀 생각 안 하고 퍼붓는 그런 성향도 있고. 다혈질스럽다고 하면 맞을까... 그걸 사실 친정식구들도, 친구들도 잘 모르거나 많이 목도하는 광경은 아니긴 한데 제대로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지. 모두들 짐작하다시피 남편. 그쪽도 성질 이상한 건 매한가지니 뭐 서로 억울한 것은 별로 없는데 나는 위에서 언급한 <다른 길>을 읽으면서 오래오래 생각을 했다. 어쩌면 다 받아준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닌가 하고. 언젠가 굴드님이 "당신은 나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라고 하길래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하냐고 펄쩍 뛰었던 기억.  헨리가 올리브한테 "당신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라고 할 때 정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서로가 결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서로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부부간에 미묘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한 부분들이 많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도 같고. 





남들에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인생에게도 아주 찰나이지만 반짝이며  빛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건 큰 성취를 이루거나 남들보다 잘 살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방금 목욕하고 나온 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비누 향. 양쪽에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싸우고 밤새 뒤척거리다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보며 느꼈던 감정. 아이의 유치원 발표날 왜인지도 모를  눈물이 나와서 훌쩍훌쩍 울고 있던 나.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모자란 나날들. 아름다운 오늘의 햇살.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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