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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영 Oct 23. 2021

<읽는 직업>

읽는 것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읽는 직업> - 이은혜지음, 바다출판사 펴냄,2020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책에 인생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해답과 열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은 거의 읽지 않으시는 나의 친정엄마가 삶의 지혜의 측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깊게 알고 계신다. 장강명 작가의 말처럼 역사에서 책벌레인 빌런들은 히틀러를 비롯해 여럿이 있었고  다른 취미들과 견주어봐도 딱히 우월하다고 말하기도 좀 그런 것 같다. 뭐 애당초 취미나 취향에 우월이나 고급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물론 예전에는 독서가 좀 고상해 보이는 것도 같아 책 읽는 나를 참 대견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젊을 때 일이라 뭘 잘 몰라서 그랬던 것 일수도. 앞으로의 책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이들의 세대에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책 말고도 여러 개가 있을 것 같고 또 그게 그걸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봐야 할까라고 질문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고 여전히 삶에서 지적 성실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 방편 중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러던 와중에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글항아리 출판사의 편집장인 이은혜 님이 쓰신 <읽는 직업>을 읽게 되었고, 어떤 일들도 그렇지만 하나의 직업으로서 읽는 것이란 무엇일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그쪽 업계의 소소한 내부 사정들도 듣게 되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문장이 너무 좋다.  줄도 여러 번 긋고 마킹도 하다 보니 책은 낡은 책처럼 보이게 되었고, 이 책은 다 읽었다고 해서 누구에게 선물해 주거나 아님 내다 팔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첫 챕터인 저자 관찰기에 대한 이야기만 읽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편집자가 저자를 좋아하는 것은 필연적인 운명이라며, 좋아하게 된 저자의 근원이 되는 지점을 찾아 나서게 된다고.(p.21) 그러면서 그 저자가 참조한 책을 최소 열권 넘게 읽어가면서 저자와 세상 보는 시선을 공유하지만, 또 출판이라는 것은 비즈니스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좋아하게 되면서도 순수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것. 남의 글을 읽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니 비록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지만, 다만 글을 읽는 눈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와 살이 되게 한다(p.20~21)는 지점도 매우 재미있었다. 






인문과학서만 내다가 개인의 에세이 쪽으로 출판의 범위를 넓히게 된 이유도 밝히고 있는데  "자기 삶을 꼭꼭 눌러 담아서 공적 자아로 확장시키는 이들은 타고난 저자군에 속한다(p.50)고. 가장 중요한 것을 직시하고자 군더더기 감정과 기억은 과감히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공적인 존재로 자아를 확장시켜 스스로 글감이 되는 이들은 독자는 좋아한다(p.50)라는 표현은 사실 내용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문장이 좋아서 마킹을 해놓았던 부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떤 작가들은 자신을 통해 보여준다(.51)는 말도 어떻게 보면 읽는 사람보다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지점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 파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독자란 어떤 존재일까?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것이 독자의 마음이라고 하시던데 그 부분을 읽고 나니까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책에 끌리는 사람일까. 분야 막론하고 클리셰가 없는 것? 어떤 분야든 지금껏 듣고 읽은 것과는 달리 뭔가 새롭다는 느낌이 들거나 어렵지 않으면서도 어떤 것에 본질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면 그걸  사는가? 아니면 책을 더 많이 읽는 분들이 좋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읽는 걸까. 뭔가 패턴이 있을 텐데  한번 곰곰이 따져보고 싶네.







두꺼운 책에 대한 소회를 쓰신 챕터나 겨우 천권만 팔리는 책들에 대해 쓰신 것을 보면 가슴이 좀 아련해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좋은 책들이 좀 많이 팔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에. 개인적인 바램을 담아 "저자들이 다가가려 했던 깊고 넓은 세계에 합류하려는 이들이 최소한 2000~3000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p.189)는 부분을 읽었을 때는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게 기억이 났다.  남편과  집에 있는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래서 우리 본성에 선한 게 있다는 이야기야 없다는 이야기야? 있다는 거잖아" "아... 그렇긴 하지..."  하길래 "그럼 그 얘기를 뭐 하러 저렇게 길게 써?"라고 말하는 바람에 남편이 실소를 터트렸던....그 책의 내용이 너무 심오하다는 것이 아니다. 가독성도 중요하고 명료하게 핵심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가 다가가려 했던  더 깊고 넓은 세계로 발을 들이려는 인내심 있는 독자에 나는 포함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닌가하고.  그 대화를 나눈 이후로 그 몇 년간 노안도 심해졌고, 책에 오롯이 빠져들며 집중하는 시간도 눈에 띄게 짧아졌음을 느낀다.  성실하고 깊은  지적 탐험을 떠나기엔 이젠 좀  늦은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흐를수록 시야는 흐릿해지고, 건강 또한 나빠질 테니 지금이라도 망설이지 않는 걸로. 이 나이가 되어도 아직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궁금한 것들도  너무나 많으니까.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인용한 것 같기는 하다만. 여러 번 읽어도 참 좋다.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질까. 여기에는 '꽤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삶에 있어서 '농도'나 '밀도'는 중요한데, 내 경우 그 밀도로 책을 읽거나 쓴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책을 둘러싼 수많은 내용을 통해 채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책 한 가지만 이야기하며 마치 책 바깥의 삼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싫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안에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책이 바로 그런 세계다. (p.225) "






덧 1.




요렇게 마무리해놓으시고 책 끝에 아주 조그맣게 써놓은 걸 보고 나는 조금  웃었다. 사실 이게 진짜 맞는 말이라서. 




"삶에 윤기가 좀 흐르지만 자기 자신이 꽤 나아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기적인 자아는 잘 변하지 않아 책을 읽어도 제자리걸음인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고, 그것은 꽤 서럽다." (p.225)




덧 2.


이제 책은 많이 안 살 거라고, 지금 사놓고 안 읽은 것들도 많아서 "사놓고 안 읽은 책 쪼개기 프로젝트"라도 해야 할 판국이라고 굳게 다짐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사서 읽고 싶고, 도전해 보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또 죄다 메모해 놓은 다음에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 






덧 3.



책을 자기계발의 수단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으로 인식하시며 좋아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정말 행복해하실 그런 책. 입소문만으로 소리없이 잘 팔리고 있는 책이라 들었지만 더 많은 분들과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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