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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영 Oct 27. 2021

<명랑한 은둔자> - 캐럴라인 냅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 




<명랑한 은둔자> -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2020


예전에는 일간지의 북 섹션이나 씨네21같은 잡지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들 중에서 마음에 끌리면 그 책을 사는 식으로 책을 구입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지는 정말 오래된 것 같고, <빨간책방>같은 팟캐스트도 열심히 듣고 추천해 주신 책들 많이 사다가 읽곤 했다.  페이스북을 하고부터는 책 좀 읽으신다는 분들이 추천하거나 쓰신 책들중에서 맘에 끌리는 것을 골랐던 것 같다. 그중에 한승혜 작가님이 좋게 읽으셨다는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을 사서 읽었는데 이 책은 나에게도 정말 너무 너무 좋았다. 

정말 제대로 된 에세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라는 걸 절감했다고 할까. 심리묘사들이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다.  그러다보니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어느 정도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메모를 하면서 읽었다) 캐럴라인 냅은 이번에 처음 듣는 작가였는데 20여년 정도를 저널리스트로 살면서 몇몇 끔찍한 중독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술,거식증, 반려견에 대한 지나친 집착등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회고하는 형식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펴냈고 큰 반향을 얻었다. 이후 마흔 두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남긴 책은 세 권. 사후에 나온 것이 두 권이다. 이 <명랑한 은둔자>는 냅이 서른 살때부터 마흔 두살 때까지 <보스턴 피닉스>나 <살롱>같은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원서와는 분량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조금 덜어낸 것으로 보인다. 



밑줄을 열심히 긋고, 어떤 때는 책의 여러 페이지를 통째로 다 메모를 할 만큼 좋은 문장이 많았는데 특히 나는 책에 있는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내면을 표현하는 부분들보다도 상대적으로 평이하게 쓰인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정말로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일까.

내게 적합한 삶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격려받고, 무엇에 의욕을 얻고, 무엇에 만족하는 사람일까.

........

나는 자유로운 저녁과 주말을 어떻게 쓰기를 좋아할까.

내게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적절한 혼합비율은 얼마일까.

나는 타인이

나를 얼마나 접촉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면 좋겠는가. 


내가 정말로 허기를 느끼는 대상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재미를 얻고 무엇에서 위안을 얻고,

무엇에 흥미를 얻는 사람일까.  (p.194~198) 



작가는 이 책에서 20대에서나 할 고민을 서른일곱살인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는, 아니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물은적조차 없다는 사실에 한숨 지으면서 너무나 심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쓴지 5년이 지난 마흔 두살때 폐암진단을 받고 그 후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난다. 자기에 대해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맞는 답을 하려고 애쓰며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은 생각보다 수고가 들고, 힘든 일인데다가 사실 두려운 일이기까지 한 일이라고 작가는 썼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래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지금까지 키우는 동안 한번도 대면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다. 아니 간간이 생각이야 했겠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준 것 같지는 않다. 결혼을 하고 난 뒤로는 그냥 가족들을 조력하면서 살아왔던 날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예전 모습 말고 그 세월동안 나는 어떤 식의 취향을 쌓고,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지냈던 걸까. 생각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직면하게 될 때 그게 예상보다 좀 더 별로일지도 몰라서 두렵다는 마음도 든다.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대답이 나올 것도 같다.





덧.

책 첫부분에 있는 옮긴이의 말 조차  정말  좋다. 



"...나는 그 책에 쉴새없이 밑줄을 그었다. 내가 쓴 글 같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난 냅처럼 심각하지 않으니 냅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난 냅처럼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명료하게 분석하고 쓸 줄 모르니까 역시 내가 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냅의 그 섬세한 문장, 얼음처럼 냉정한 시선, 넌더리 나도록 솔직한 표현,그것은 숙취와 자기연민에 빠진 내 머리로도 알 수 있을 만큼 특별한 글이었다.(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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