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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영 Nov 03. 2021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고전동화보다 열 배는 더 재밌는 이야기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곽한영 지음, 창비 펴냄, 2017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엄마들은 시공주니어나 혹은 비룡소의 클래식들을 구입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그림책 열심히 읽어주다가, 어느 정도 혼자서도 책을 잘 읽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큰 애가 초3쯤 되었을 무렵에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을 구입했다. 그 전집을 보면 첫 번째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고,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해 <톰 소여의 모헙>이라든지 <빨간 머리 앤>이라든지 <보물섬>이나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책들이 양장본으로 예쁘게 만들어져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즐겁게 읽었던 책이라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도 다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쉽게도  우리 아이들은 문학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중에서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지. 




페이스북에서 곽한영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흥망성쇠(?)를 다룬 글을 보고 나서였던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이나 사건인데, 풀어내시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잘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으로 아주 맛깔나게 풀어쓰시는 걸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다. 이어서 큰 화제가 되었던 배구 시리즈도 나처럼 배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남편처럼 일찍부터 배구 마니아로 살았던 사람에게도 너무나 재미있는 그런 이야기여서 모두에게 큰 즐거움을 준 그런 글이었다. 저자에 흥미를 느낀 나는 곽 교수님이 쓰신 책 중에서 두 권을 구입했는데 그중 한 권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이고, 다른 한 권은 중1인 큰 아이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산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이다.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전동화들을 초판본을 구하는 취미가 있는 저자가 책을 구입하게 된 경위와 함께 그 동화의 작가들의 뒷이야기나 당시 시대적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신 것.  솔직히 처음 알게 된 일들이 많기도 하고, 너무 술술 잘 읽히기도 해서 책에 홀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렇게나 재미있는 책을 왜 이제야 읽게 된 거냐? 놀라워하면서 책에 코를 박고 읽었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내용마다 재미있는 지점들이 참 많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인 올컷은 사실 아버지의 가스 라이팅과 무책임한 가정에 대한 태도로 평생을  고통받았었다는 점, 애초에 <앨리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밀어붙인 길고 긴 농담과도 같은 이야기였고, 그건 셰익스피어를 포함해 평전보다 농담 어록이 더 두껍다는 처칠이나, 이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내지는 <닥터 후>까지 이어지는 영국식 농담의 전통이라는 점.(p.62) 하지만 앨리스의 진짜 반전은 이 책의 내용 안에 있으니 꼭 읽어보시면 좋겠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이 농담을 좋아하고 해학적인 글을 쓰는 걸 즐겼던 작가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속물인지는 사실 잘 몰랐던 부분인데 이 책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좋았다. 일단 마크 트웨인의 일생을 규정하는 것은 돈, 허세, 그리고 무절제와 소송이라고.ㅋ 





<보물섬>에서 언급한,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매우 흥미로웠다. 모험의 기억은 가지고 있으나 더 이상 모험이 없는 시대, 거대화된 도시와 꽉 막힌 계층구조, 허례로 가득한 예법과 인간관계에 숨 막혀하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소설을 통해 일탈을 꿈꾸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p.172)이라는 해석이나, 한 두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장르를 형성할 때는 그럴만한 시대적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학교 이야기 장르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등장했다(p.223)는 해설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안데르센의 이야기여서 그 챕터만 두 번 읽었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생을 비천한 집안 배경과 외모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고, 평생 꿈꿨던 것은 품위 있고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상류계급의 삶이었지만 실제는 늘 비틀린 길을 어지럽게 달려왔던 안데르센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아픈 여정이라는 작가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 






밴쿠버의 고서점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초판을 발견하게  된 계기로 오래된 동화들의 책을 수집하면서 그 책에 얽힌 뒷이야기나 작가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는데, 책이 만드신 분들의 예상보다는 많이 팔리지 않았던 것 같다. 초판이 2017년도에 나오고, 다음 해인 2018년도에 2쇄를 찍었는데 기대에는 좀 못 미친 탓인지 후속작은 계획에 없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아직은 아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이 고전동화들을 지금보다 더 재미있고 즐겁게 읽는다면 이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을 꼭 권해주고 싶다. 곽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실제로 직접 들려준다면 정신을 쏙 빼놓고 들을 것 같은데 혹시 강연의 형식으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풀어주실 계획은 없는지도 매우 궁금하다. 결론은 강추. 어렸을 적 코 박고 봤던 고전 동화들보다 딱 10배쯤은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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