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3년 차 소설가. 여느 작가들보다 습작기가 짧았고, 단독 저서도 비교적 빨리 나왔다. 2012년 뜨거웠던 여름,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을 받았고, 이대로라면 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안타 정도는 꾸준히 칠 소설가로 자리 잡을 줄 알았다.
지금 나를 돌아보면, 분명 소설을 쓰긴 하지만 본업치고는 그 비중이 매우 적어 보인다. 심지어 우리 딸조차도 소설가보다는 방송국 다니는 아빠, 학교 강의하러 가는 아빠, 문학관에 일하러 가는 아빠, 뭔가 일이 잔뜩 많고 원고는 쓰는 것 같지만 소설이란 건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문득 지난날들을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 이것뿐이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고, 말해도 믿지 않는 징크스. 소설을 쓰려고 하면 뭔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착상하고 취재하고 자료 정리하고 구성 이후에 본격적으로 본문을 쓰려고 하면 일이 생긴다. 예를 들면 당시 일했던 편의점에서 갑자기 직전 알바가 잠수를 탄다거나, 편의점에서 새벽에 일할 때 뭐 좀 쓰려고 하면 진상이 등장한다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편의점에 정전이나 벌레가 떼거지로 기습한다. 그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하수구가 막혀서 급하게 뚫어야 한다거나, 비가 집안으로 들이친다거나, 노트북이 자동 업데이트한다거나. 본격적인 본문에 들어가려고 하면 이상하게 그 타이밍에 맞춰서 일이 생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자잘한 일상들을 해결하고 소설 앞에 앉으려고 하면,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가 전화를 건다거나, 새삼스럽게 여자친구가 생겨버리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소설을 쓸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당시 여자친구와 대판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친한 동네 형이 다단계에 빠져서 구출해 주느라 쓸 흐름을 완전히 놓치기 일쑤였다.
그 밖에 이사를 했고, 크게 아팠다가 괜찮아졌고,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고, 편의점을 그만뒀고, 방송국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 밖에 다른 일거리들이 생겼다.
삶에 큰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만 하고 중반이나 마무리 앞에서 멈춰버린 작품들이 한두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방송국에 다니면서 경제적인 압박을 많이 받기도 했었는데, 당장 한 푼이 아쉬울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일거리가 새롭게 생겼다. 방송국에서는 내가 맡을 프로그램 하나가 더 생기기도 하고, 갑자기 강의가 하나 더 늘어났고, 그 밖에 제법 많은 돈을 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일이 생겼다.
우연이라 생각하기엔, 소설만 쓰려고 하면 일감이 추가된 건 확실하다. 의도치 않게 난 프로 N잡러가 되어버렸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자세하게 되짚어보기 위해,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발생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