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악단이 남긴 질문

by 종이비행기

신의 악단을 가족과 함께 보았다.
제목만 보면 종교 영화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신앙을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힌 북한. 국제사회의 2억 달러 지원을 얻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하나.
가짜 찬양단을 만들어 부흥회를 열어 보이라는 당의 명령.
보위부는 북한 최초의 ‘가짜 찬양단’을 만들고, 부흥회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 보위부 장교가 하나님의 존재를 심장으로 느끼게 된다. 결국 그는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될 위기에 놓인 찬양단, 승리악단(신의 악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전개 자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영화는 몇몇 장면에서 웃음을 건네고, 또 몇몇 장면에서는 눈시울을 건드린다. 기독교인의 시선으로 보면 북한의 종교 탄압 현실과, 그 틈에서도 꺼지지 않는 신앙의 불씨가 은혜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인 인물은 보위부 간부다.
그는 어린 시절, 몰래 성경책을 읽어 주던 어머니를 의도치 않게 고발해 잃었다. 사촌 형은 반당 종파 혐의로 직접 처형했고, 이후로도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일을 해왔다. 신앙을 말살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 승리악단과 함께 부흥회를 준비하며 성경을 접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북한판 바울의 회심’처럼 그려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과도할 만큼 기독교를 탄압했던 인물이,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고, 급기야 자신을 희생하는 단계까지 이른다는 설정. 그것이 과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 모든 변화가 현실처럼 서서히 진행될 필요는 없고, 극적 압축 또한 서사의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의 변화 속도를 통해 ‘기적’을 말하려는 듯 보인다. 마치 기이한 사건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처럼 이어지고, 갑작스러운 희생을 통해 진리를 완성하려는 듯한 인상도 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언제나 급작스러운 결단과 극적인 죽음으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믿음은 더디고, 의심하고, 흔들리고, 다시 붙드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동과 함께 질문을 남겼다.


믿음은 어떻게 자라는가.
신앙은 어느 순간 갑자기 완성되는 것인가, 아니면 오래 흔들리며 버텨낸 시간의 결과인가.


영화를 보고 나오며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장엄한 찬송도, 극적인 희생도 아니었다.
‘그는 왜 그렇게 빨리 변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속 인물처럼 단번에 변하기를 기대하고, 단번에 깨닫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현실의 신앙과 삶은 대체로 느리고, 모호하고, 자주 후퇴한다.


<신의 악단>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해, 구원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변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찬송 대신 질문이 맴돌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질문이 이 영화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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