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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심 Feb 12. 2017

유년의 뜰

명절이야기

어린 시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엄마와 할머니는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살다시피 하며 

명절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셨지요. 그럴 때면 으레 할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며 하는 말씀이 있었어요.

에이, 이놈의 명절, 범이나 물어가라. 그러면 부엌문에 기대서서 음식 만드는 걸 구경하던 작은언니가

냉큼 되받는 말이 있었습니다. 난 범이 명절 몇 개 더 물어 왔으면 좋겠는데. 엄마와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다시 일손을 재게 놀리곤 하셨지요.

 

설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미리 만들어 둔 고구마 조청을 꺼내서 쌀과 검정콩, 옥수수, 땅콩 등을

장에 가서 튀기거나 집에서 볶아서 강정을 만드셨습니다.  모두 다 집에서 농사지은 것들이었죠.

할머니가 만드는 강정의 고소한 냄새가 명절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할머니가 수제비 만들 때 쓰는 밀대로 강정을 밀고 부엌칼로 썰고 할 때 옆에 붙어 앉아서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맛도 달콤했지요. 

할머니는 설을 사나흘 앞둔 이맘때 쯤이면 두부를 앗았어요. 

콩을 불려서 맷돌에 갈고 콩물을 끓이는 동안 온 집안에는 고소한 콩냄새가 가득했지요.

밤새 잠도 못 주무시고 커다란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던 할머니,

그 옆에서 붙어 앉아서 졸린 눈을 비비며 옛날이야기를 조르다가 아침에 눈을 떠보면 안방 아랫목 

할아버지 옆자리에서 자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안아다 눕히셨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뛰어나가면 커다란 함지 안에 나무틀 속의 두부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아침상에는 잘 익은 김장김치와 돼지고기가 넉넉히 들어간 비지찌개가 올라왔어요.


설 대목장이 서는 날이면 할머니와 엄마는 전날 불려놓은 멥쌀을 큰 함지에 나누어 이고 읍내로

향했습니다. 저는 엄마 치마꼬리를 붙들고 따라나섰어요. 읍내 방앗간에는 늘 사람이 많았어요.

엄마와 할머니는 저를 방앗간의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세워 두고 명절 장을 보러 가셨지요.

에미야, 고기도 한 칼 끊고, 굴비도 좀 팔아야 쓴다. 저는 늘 할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고기는 왜 끊어야 하며, 굴비는 왜 사지 않고 팔아야 하는지. 할머니는 쌀 사는 걸 쌀 판다고 하고

물건 파는 걸 돈 산다고 하는 등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가끔 할머니가

외국인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어요. ㅎㅎ 엄마와 할머니가 가고 난 뒤에 혼자 방앗간에서

줄 서는 일은 말도 못하게 지루했지요. 저처럼 엄마나 할머니를 대신해서 줄 서는 아이들이 몇명

없었다면 아마 참기 힘들었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 인상을 쓰고 혀를 내미는 등 약을 올리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꿀밤 먹이기도 하는 등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용을 썼어요. 그러다가 시끄럽다고

어른들한테 야단맞기도 했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지루한 줄 서기의 끝에는 신나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갓 뽑아낸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일등으로 맛볼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 집 쌀이 떡가래가 되어 구멍 속에서 뽑아져 나오고, 방앗간 아주머니가 가위로 뚝뚝 잘라

찬물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커다란 채반 위로 건져올리기 시작할 때 쯤 엄마와 할머니가 한 보따리씩

장 본 것을 이고 나타났습니다. 방앗간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기계를 돌리고, 기계소리 때문에

사실 아저씨의 콧노래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었지요.

방앗간 아주머니는 가래떡 하나를 큰 도마 위에 놓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 접시에 담은 다음

툇마루에 걸터앉은 엄마와 할머니와 제 앞에 가져다 놓았어요.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한 사발도

같이 내놓았지요. 거기까지 가실려면 요기 좀 하고 가셔야쥬. 하긴 그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으니까요. 우리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가래떡에다 장 본 것까지 합하면 짐은 산더미 같아서 저걸 다 어떻게 이고 가나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는 떡 함지 위에 장 본 짐을 나누어 얹고는 끄떡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들고 가면서 올려다 보면 엄마 머리 위의 짐은 엄마 키보다 더 커보였어요.


짧은 겨울해가 넘어간 시골길은 벌써 캄캄했습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나목들이 무서워서 엄마의 치마꼬리를 더 꼭 붙들었지요.

어두운 길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면 '엄마야!' 하면서 할머니 뒤로 숨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보면 추위도 잊어버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어요.

앞 쪽에서 작은 불빛 같은 게 반짝거리는 게 보이다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알아본 저는 '할아버지!'를 외치며 달려갔어요.

할아버지는 자전거의 짐칸에 엄마와 할머니의 짐을 모두 받아서 산더미처럼 쌓아올렸습니다.

밧줄로 단단히 묶고 나서는 저를 번쩍 들어서 할아버지의 좌석과 자전거 핸들 사이에

담요를 말아놓은 제 전용좌석에 앉혀 주셨어요. 저는 그때처럼 할아버지가 좋은 적이 없었어요.

갑자기 짐을 벗으니까 걸음이 허청허청 하는 게 날아갈 것 같구나.

할머니의 말씀을 뒤로 들으며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집을 향해 달려갔지요.

이제는 길가의 나무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그날부터 설이 될 때까지 또 날마다 엄마와 할머니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셨지요.

지지고 볶는 고소한 기름냄새와 양념냄새가 하루 종일 집안을 감돌았어요.

그 와중에 할머니는 호롱불 아래 앉아서 제 색동저고리를 꿰매 주시기도 했어요.

그 색동저고리를 입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동네를 쏘다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설날보다는 설을 앞둔 며칠이 확실히 더 행복했습니다.

기대하고 상상하고 기다리는 일,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진짜 좋은 것은 다 그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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