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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Feb 07. 2022

'스톤월 항쟁' 이전의 퀴어

넷플릭스 드라마 〈테일 오브 더 시티〉(2019) 리뷰


  〈테일 오브 더 시티〉는 샌프란시스코 퀴어 커뮤니티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잔잔한 분위기의 드라마 시리즈다(원작은 소설이고, 여러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자그마한 퀴어 아파트/공동체인 ‘바버리 레인’에 거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레즈비언 커플이었으나 그중 한 명이 FTM 트랜스젠더로 트랜지션하며 겪는 이야기, 세대‧인종의 차이를 건너 연애 중인 게이 커플의 이야기, 친구의 딸을 입양해 양육하던 이성애자 부부의 이야기 등등. 나름의 이유로 흔들리지만 ‘바버리 레인’이라는 물질적‧정서적 토대를 지니고 있는 퀴어들의 삶은 적당한 위로 혹은 부러움(이를 테면, "여긴 샌프란시스코잖아요. 껍데기만 남았더라도"와 같은 대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준다.


  하지만 10부작 드라마의 핵심은 8편이 되어서야 나온다. 바버리 레인을 마련하고 퀴어들을 불러 모은 애나 매드리걸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 이 에피소드는 그 자체가 한 편의 완성도를 갖추어 독립성을 지닐 정도로 빼어나다. MTF 트랜스젠더 여성인 애나는 트랜스젠더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핍박하던 경찰의 일원과 사랑에 빠지고 그와 미래를 약속하는데, 이로 인해 퀴어 동료집단과 사랑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곤란에 빠진다.


젊은 시절의 애나 매드리걸(위)과 노년이 된 그녀(아래)


  애나 매드리걸의 서사는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퀴어가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관해, 즉 퀴어들은 늘 '옳은' 선택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젊은 애나 매드리걸의 서사가 트랜스젠더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컴튼스 카페테리아 항쟁(Compton’s Cafeteria Riot)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보통 주류사회의 핍박에 저항한 최초의 퀴어 항쟁으로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이 언급된다. 하지만 단순히 사건이 발생한 시기만 놓고 보더라도, 이런 식의 재현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스톤월 항쟁은 1969년에 발생했지만, 컴튼스 카페테리아 항쟁은 1966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스톤월 항쟁에 대한 서술이 백인 남성 게이의 역사로만 잘못 재현되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재기되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스톤월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항쟁에 기여한 비백인, 비게이 퀴어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왔다는 문제제기는 퀴어 커뮤니티 내부의 위계와 권력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테일 오브 더 시티〉는 컴튼스와 스톤월의 어그러진 재현을 바로잡고, 바로 이 지점을 퀴어 공동체의 기원으로 삼음으로써 훼손된 정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트랜스젠더 역사학자인 수잔 스트라이커는 자신의 책 《트랜스젠더의 역사》에서 컴튼스 카페테리아 항쟁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설명은 애나 매드리걸의 매혹적인 서사와 더불어 퀴어 커뮤니티의 기원과 현재, 동시대적 의의에 대한 논의에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8월의 어느 주말 밤(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터크 로와 테일러 로 모퉁이에 있는 24시간 카페테리아 컴튼스는 평소처럼 많은 드랙퀸, 남성 성노동자, 빈민, 여행자, 가출 청소년, 무일푼 단골들로 소란스러웠다. 많은 돈을 쓰지도 않으면서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 있는 젊은 퀸 무리에 짜증이 난 가게 관리인은 이 사람들을 몰아내려고 경찰을 불렀다. 여름 내내 더 잦아진 일이었다. 컴튼스의 모든 손님을 태연히 거칠게 다루는 데 익숙한 험상궂은 경찰관이 한 퀸의 팔을 붙잡고 그 여자를 끌어내려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갑자기 경찰관의 얼굴에 커피를 뿌렸고, 난투극이 벌어졌다. 깜짝 놀란 경찰관에게 접시, 쟁반, 컵, 은식기가 날아들었고, 경찰관은 밖으로 달려 나가 지원을 요청했다. 컴튼스에 있던 손님들은 테이블을 뒤집고, 판유리 창문을 박살냈으며, 식당 밖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범죄인 호송차가 도착했고, 컴튼스 인근 터크 로와 테일러 로 모퉁이 곳곳에서 시가전에 벌어졌다. 드랙퀸은 경찰을 무거운 핸드백으로 때리고 하이힐로 걷어찼다. 경찰차가 부서지고 신문 가판대는 잿더미가 됐다.

(…)

  그런 저항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가 트랜스젠더 시민하고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공간을 창조했다. 실제로 도시는 트랜스젠더를 그저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적법한 요구를 지닌 시민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식 변화는 현대 트랜스젠더 사회 정의 운동을 바꾼 결정적인 한 걸음이며, 국가 권력과 사회적 정당성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관계 맺기의 시작이었다.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운 트랜스젠더 여성이 거리에서 직접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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