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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Feb 04. 2022

품위와 권위가 천박해진 시대에 필요한 영화

영화 〈굿 윌 헌팅〉 리뷰


  상처가 많은 사람,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잔뜩 움츠러든 사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시 돋친 말로 스스로를 무장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몇 겹의 장애물을 넘어야만 다. 대부분은 그 사람이 완전히 마음을 닫았다고 성급히 판단하거나, 그의 공격성이 너무 도드라져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를 포기해버린다.



  영화 〈굿 윌 헌팅〉은 이런 상황에 하나의 대답을 제공한다. 천재적 재능을 가졌지만 유년기의 상처로 이를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는 윌 헌팅은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는 한 교수의 소개로 숀 매과이어를 만난다. 여러 심리치료사가 두 손 두 발 들었기에, 숀은 윌의 마음을 열 마지막 전문가였다. 윌은 첫 만남부터 숀을 모욕하며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 숀은 흥분하여 윌을 겁박하기도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는다. 그리고 마냥 기다린다. 윌의 공격성이 휘발되어 내면의 취약함을 드러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한다. 지금껏 자신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전문가를 보며 즐거워하던 윌은 숀의 침묵 앞에 당황한다. 그리고 당황 끝에 입을 연다.


  숀을 보며 품위‧권위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 상처받은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그저 기다려주는 것. 나는 너를 도와주거나 구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네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임을 상대에게 알려주는 것. 숀의 인내는 섣부른 동정이나 시혜적 감정이 야기하는 오만함을 걷어낸 채, 상처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투명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약자의 마음‧말문을 연다.


  기다림 이후는 상대의 취약함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이는 상대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가 겪어온 고난에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상처가 그에게 어떤 해로운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상처는 ‘극복’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성찰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존재의 모든 부분을 잠식하게 둘 수는 없다. 상처를 진단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상처를 지워버리지 않되 그것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다소 가혹한 말로 윌을 진단하는 숀의 태도에는 윌이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



  마지막은 상처 입은 자가 그만하라 할 때까지, 눈물을 터뜨릴 때까지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일이다. ‘네 탓이 아니야’란 말은 보통 좋은 의미로만 독해된다. 하지만 맥락에 따라 상처 입은 자의 아픔을 수동적 대상으로 만들거나 타자화하는 언설로 읽힐 가능성도 있다.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툭 던진 ‘네 탓이 아니야’란 말이 오히려 현재의 취약함만 부각시켜 그의 고통을 수동적 전시의 대상으로 만드는 효과를 자아내는 무책임한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숀은 윌이 자기 말을 시작한 후에야, 그의 미래에 대한 진중한 조언을 건넨 후에야 이 말을 건넨다.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이 피상적 위로에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신뢰 관계를 쌓은 후 윌의 어깨를 짓누르던 고통스러운 과거의 굴레를 걷어내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상처를 마주하고, 위로하며, 새로이 거듭나도록 지지해주는 일은 이토록 지난하다. 많은 전문가가 혀를 내두르며 윌을 포기할 때 숀만이 그를 버리지 않고 이 모든 과정을 그와 함께했다. 윌이 과거를 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의 오랜 친구 처키의 든든한 지지와 더불어 여러모로 윌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숀의 너그러움 덕분이었다. 숀이 보여주듯, 존재의 위계는 과시의 수단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를 품어주는 자원일 수도 있다. 품위와 권위가 물질로만 규정되는 천박한 시대, 우리는 〈굿 윌 헌팅〉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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