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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19. 2022

〈코다〉가 드러낸 농인들의 세계

영화 〈코다〉 리뷰

7★/10★


  엄마, 아빠, 오빠가 모두 농인인데 막내딸만 청인인 가족에서는 장애를 둘러싼 위계가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자’가 되기 때문이다. 〈코다〉는 이런 설정을 영리하게(동시에 진정성 있게) 활용하여 익숙한 성장영화‧음악영화의 공식을 비튼다. 가족의 유일한 청인인 루비가 학교에서 합창 동아리에 가입하는 장면을 보자. 다른 영화에서는 음악영화를 전개하기 위한 당연한 설정 정도로 넘어갔을 법한 이 장면은 〈코다〉에서는 주인공 루비의 성장을 조금 색다르게 표상하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청소년이 가족의 품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건 성장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다. 여기서 가족은 대개 주인공의 꿈을 옥죄는 답답한 관습의 집합체로 재현된다. 그런데 〈코다〉에서처럼 가족이 모두 농인이라면 어떨까? 내 마음을 잘 몰라주는 가족이 동시에 내 도움 역시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 말이다.



  가족에게서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루비는 어릴 적 발음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다. 그런 루비가 자신의 성장을 모색하는 방편으로 합창단, 즉 ‘목소리’를 내야 하는 동아리에 가입한 건 일종의 '독립'선언이다. 그런데 쉽지만은 않다. 다른 성장영화에서처럼 부모가 꽉 막힌 채 못되게 굴어서가 아니다. 루비의 가족이 루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루비의 가족은 어업에 종사하는데 여러모로 작업 상황이 악화되어 루비의 도움이 긴요하다. 루비가 없다면 타인과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비는 어쩔 수 없이 동아리 연습에 자꾸 빠지게 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영화는 루비가 대학 입학을 위한 실기 시험장에서 말과 수화로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이 갈등을 해결한다. 보통의 성장영화라면 권위적인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녀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장면이 이를 대신했을 터지만, 〈코다〉에서는 반성의 주체가 바뀐다. 루비의 오빠 레오의 말(수화)을 들어보자. “그 사람들이 우리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게 해. 난 무력하지 않아.” 루비를 늘 가족 곁에 묶어둔 건 농인인 가족이 아니라 농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자들, 즉 비장애인중심주의에 안온함을 느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사회문화적 제도들이다. 루비는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사회적 의무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로 짊어졌기에 그토록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장면도 있다. 합창단의 학교 공연에 참석한 루비의 가족은 박수‧환호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내내 주변의 눈치만 본다. 루비의 노래가 가족에게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루비의 대학 실기 시험 장면이 다시 한번 중요해지는 이유다. 루비가 말과 수화로 동시에 노래를 부르자 이번에 어리둥절한 건 실기 시험장의 평가자들이다. 레오가 그러했듯, 루비의 수화 앞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독해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코다〉는 농인의 삶과 그들을 위한 고민을 신중히 담아냄으로써 성장영화‧음악영화의 관습을 비틀어 장르를 새롭게 하고 관객의 각성을 촉구한다. 잔잔한 따뜻함을 자아내는 영화가 던지는 무수한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무엇이 농인과 청인의 위계를 만드는지,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인지를 말이다. 차별받는 와중에도 더 넓은 세상에 선보일 아름다운 질서를 창조한 농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코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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