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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05. 2022

지난 세기 혁명가의 모범

영화 〈아메리칸 레볼루셔너리〉 리뷰


  영화가 만들어진 2013년 기준 95세(2015년 사망)였던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그레이스 리 보그스. 그는 70년을 혁명가, 그것도 FBI를 설립한 J. 애드가에게 위험인물로 지정될 만큼 ‘위험한’ 혁명가로 살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자신의 관점을 흑인 운동으로 확장했다. 마찬가지로 걸출한 혁명가였던 흑인 남편과의 관계에서 젠더 관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늘 '반란을 넘어서는 혁명'을 고민했다. 폭력을 동반한 반란은 대중의 분노를 결집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폐해도 있다. 혁명은 반란과 다르다. “그냥 화내고 분노하고 격분하는 것은 혁명의 구성요소가 아니다.” 그는 급진행동주의가 결여한 깊은 사유를 장기적‧현실적으로 풀어내는 활동을 혁명으로 정의한다. 그에게 혁명은 진화이기도 하다. 모두가 주체가 되어 나와 세상 모두를 바꿔내는 일이 혁명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체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상은 노동자나 흑인이 대표자가 되는 것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모두가 혁명가의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 혁명은 성공할 수 있다. 때문에 혁명은 느리다. 빠른 답으로 단번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발상은 환상에 불과하고, 활동가들에게 번아웃을 초래하기만 한다.



  그는 혁명가가 새로운 종류의 인간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제도를 재발명하여 새로운 꿈을 만드는 것이 혁명가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낡은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되기는 너무 어렵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생각이다. 혁명가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생각하여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혁명의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레이스 리 보그스는 지난 세기 혁명가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이론가이자 조직가로서 대중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들이 현실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도우며 그들과 함께 더 좋은 미래를 그려나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7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이 원칙을 잃지 않고 혁명가로 산 그가 존경스럽다. 동시에 궁금하기도 하다. ‘계몽’, ‘진보’를 넘는 새로운 시대의 혁명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레이스 리 보그스가 보여준 혁명의 가능성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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