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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ul 18. 2022

게이 사우나의 문법

영화 〈호수의 이방인〉 리뷰


  게이 사우나, 게이 찜질방 등에 관한 보도는 몇 년에 한 번씩 꼭 나와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대개 잠입 취재의 형식으로 기술되는 이 기사는 이성애 남성이 게이들의 비밀스러운 공간에 들어갔을 때 ‘당하게’ 되는 일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고는 한다. 겉으로 보면 일반 사우나인데, 들어가 보니 낯선 남자들이 자기 몸을 불쑥 만졌다는 식이다. 이는 자신이 느낀 ‘불쾌감’을 확대 재생산하여 성소수자 전반을 향한 혐오를 부풀리려는 목적하에 작성된 기사인 경우가 많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성인들이 합의하에 관계를 갖는 것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별 문제가 될 일이 아니지만, 그곳에서 얼마나 ‘더럽고 불쾌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호들갑 떨며 말함으로써 성소수자 혐오의 근거를 마련해주려는 것이다.     


  〈호수의 이방인〉은 프랑스의 게이 사우나라 할 만한 한 호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담아낸 퀴어‧스릴러 영화다. 남자들만 오는 이 호수는 게이 남성들이 파트너를 물색하는 공간이다. 수영을 즐기고 호숫가에 누워 쉬다가, 호수 옆의 숲으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물색하고, 그와 섹스를 즐기는 장소 말이다. 대도시였다면 좁은 실내 공간에서 이뤄졌을 법한 일이 넓고 밝은, 아름다운 호수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영화에는 게이 사우나에서 지켜지는 공간의 문법/규칙이 잘 드러나 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곁눈질로 상대가 자신의 스타일인지를 탐색하기, 휴식 공간이라 할 만한 호숫가에서는 섹스하지 않고 숲속에서만 하기, 누군가를 욕망하더라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물러나기 등등. 발기된 성기, 오럴 섹스, 사정 장면 등이 연달아 나옴에도 영화가 자극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성애적 장면이 게이 남성들이 구축한 공간의 규칙과 어우러져 재현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행위들의 연속이겠지만, 서로의 욕망을 존중하고 그 욕망을 안전하게 펼칠 공간과 그 공간의 질서를 만들어낸 자들에게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물론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생김새나 몸매에 따라 위계가 나뉘기도 한다. 법과 같이 명문화된 약속이 아니기에 공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지속적으로 규칙에 관한 경합‧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에 대한 어떤 이상을 품었는지에 따라 관계의 양상도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애인처럼 서로를 사랑할 사람을 찾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여럿이 함께 즐기는 쾌락 중심의 관계를 모색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곳은 이성애규범적 성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제공하지 못한 쾌락, 즐거움, 안정감, 소속감을 게이 남성들에게 제공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커다란 평화를 느꼈다.     


  물론, 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일이다. 프랭크는 오랫동안 눈독 들였으나 늘 다른 남자와 함께여서 다가가지 못했던 미셸이 자신의 파트너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프랭크는 멈추지 않는다. 미셸이 살인자임을 알고 난 후에도 그에게 다가가 친밀한 파트너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프랭크는 미셸과의 관계가 위험을 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미셸과 애인처럼 지내는 자신 역시 미셸에게 살해당할 수 있음을 말이다. 하지만 게이 섹스가 위험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동성애적 욕망이 금지되고, 차별받는 곳에서 게이 욕망은 언제나 존재 자체로 위험이었다. 미셸이 전 애인을 익사시켰던 호수로 그를 따라 들어가 함께 수영을 즐기는 프랭크. 쾌락, 욕망, 공포가 혼재된 호수로 헤엄쳐 나가는 프랭크의 긴장된 얼굴은 게이 섹슈얼리티의 위태롭고도 모험적인 특징을 대변한다.     



  영화는 이 공간을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공간으로만 제시하지 않는다.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한 경찰이 조사 차 호수를 매일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금지와 위반의 문법이 깃든 호수에 공적이고 규율하는 권력이 들어온 것이다. 공적 규율은 촘촘하고 탄탄한 자기 문법을 갖췄다. 형사에게서 미셸을 지켜주려는 프랭크의 시도는 점점 궁지에 몰린다. 형사가 묻는다. “당신들이 사랑하는 방식이 이해가 안 가요.” 깊은 호수 바닥에 처박혀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지독히 외로웠을 피해자의 처지를 생각해보았냐는 경찰의 물음은 비규범적 욕망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던 호수의 규칙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심문한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순간적‧즉흥적 쾌락을 보장했던 호수는 한 사람을 긴 맥락에서 이해하고 품어주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게이의 삶이 욕망과 쾌락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공간의 규칙이 포괄할 수 없는 일(살인사건)이 생겼을 때 호수의 취약함은 폭로될 수밖에 없다. 게이들은 자기 욕망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관계성을 확립하고 이를 안전하게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지만, 이것이 삶 전반을 보듬을 수는 없다. 스릴러 영화로서의 〈호수의 이방인〉이 자아내는 긴장감은 여기서 생긴다. 화해될 수 없는, 위계화된 두 세계에 동시에 걸친 프랭크의 혼란과 욕망을 조명함으로써 말이다.     


  그 모든 위험과 취약함, 위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셸을 찾는 프랭크. 기울어진 두 세계 사이의 위계, 소극적이지만 늘 프랭크의 곁을 든든히 지키는 친구 앙리의 사랑과 죽음은 프랭크의 최종 선택이 갖는 의미를 증폭시킨다. 미셸을 쫓아 수영하러 갈 때처럼 프랭크의 표정에는 공포와 혼란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멈출 수 없다. 적어도 남자들끼리 섹스를 하고 친밀성을 나눠온 이 공간에서는 그렇다. 규범적인 세계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취약할지라도, 어쨌든 프랭크는 그곳에서 바깥에서는 허락되지 않은 행복과 쾌락을 만끽했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 죽음과 얽힌 채 호수와 미셸을 포기하지 않는 프랭크에게서 게이의 실존을 본다. 호수는 우리들의 세계고, 프랭크의 삶은 곧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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