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견: 매버릭〉 리뷰
오랜만에 속편으로 돌아오는 옛 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는커녕 옛 추억마저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탑건: 매버릭〉은 오히려 전편(〈탑건〉(1986))보다 훨씬 뛰어난 완성도와 서사를 선보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화적 체험’,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하는 정말 재미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훌륭한 상업영화라는 것과는 별개로, 〈탑건〉과 〈탑건: 매버릭〉은 남성서사의 관점으로 살펴볼 때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워지는 영화다. 〈탑건〉은 남성판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할리우드 버전이라 할 만하다. 매버릭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반항적 기질과 즉흥적 성격으로 동료‧조직과 자주 마찰을 빚는다. 훌륭한 전투기 조종술로 매번 의심과 회의의 눈초리를 돌파하긴 하지만, 자기 고집대로 비행을 하다가 동료 파일럿 구스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자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같은 고전 작품이든 할리우든 영화든, 통제되지 않는 말썽쟁이 캐릭터가 여성인 경우 결말은 늘 비슷하다. 완전히 길들여지거나, 세계와 불화하여 파국을 맞이하거나. 하지만 같은 말썽쟁이임에도 성별만 다른 매버릭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매버릭은 비행을 멈추기는커녕 조직으로부터 네 잘못이 아니니 비행을 멈추지 말라는 독려를 받는다. 결말에 가서는 내내 라이벌 구도에 있던 또 다른 남성 인물에게 인정받기까지 한다. 완벽한 ‘내부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주인공의 콜 네임이 영단어 ‘maverick’이라는 데서부터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개성이 강한[독립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이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매버릭에게는 ‘말괄량이’로 불리는 여성들과는 처음부터 다른 결말이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탑건〉이 여성과는 다른 길을 걷는 남성 말괄량이의 사회 진입기를 다룬다면, 〈탑건: 매버릭〉은 어느새 은퇴할 나이가 된 매버릭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를 유산의 형태로 후대에게 상속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기본 설정에서부터 드러난다. 매버릭과 그의 팀은 인간 파일럿보다 무인 조종이 가능한 전투기를 더 선호하는 해군 제독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매버릭이 예산을 뺏기지 않고 계속 비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후배 파일럿 교육이다. 적이 관리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폭격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젊은 파일럿들을 교육하라는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다. 〈탑건〉의 속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짐작했듯, 매버릭이 교육해야 하는 사람 중에는 그와 함께 비행하다 목숨을 잃은 구스의 아들 루스터도 있다. 루스터는 절차적 문제는 없었더라도 매버릭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기에 내내 매버릭과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는 둘이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며 화해하는지를 좇는다. 결혼하지 않은 매버릭이 아버지를 잃은 루스터와 유사 가족을 형성하여 ‘아버지-아들’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한때 말썽쟁이였던 한 남자가 어떻게 조국의 위대한 자산이자 누군가의 훌륭한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해내는 것이다. 톰 크루즈의 열정과 영화의 완성도에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딸을 남기지 못하고 사그라진 말괄량이 여성들을 생각하면 어딘가 씁쓸해진다.
〈탑건: 매버릭〉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주인공들이 폭격해야 하는 적이 누구인지에 관한 구체적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적이 NATO 규정을 위반해 위협이 된다는 언급이 스치듯 나올 뿐이다. 적군의 인종‧국적을 추측할 만한 단서도 없다. 적이 강력하고 악할수록 주인공의 ‘선함’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이는 꽤 흥미로운 지점인데,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와 탄탄한 연출, 무엇보다 매버릭과 루스터의 ‘아버지-아들 되기’ 서사에 집중함으로써 적군 얼굴의 빈자리를 채운다. 작전에 성공한 후 기지로 되돌아갈 때, 매버릭과 루스터가 설원 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진심을 확인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요컨대 ‘탑건’ 시리즈는 다소 길어 보이는 35년의 시리즈 공백을 오히려 영화적 자원으로 활용하여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시리즈의 공백을 한 남성의 생애주기에 맞춰 마치 매버릭이 은퇴할 나이가 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남성서사를 상업 블록버스터와 버무린 것이다. 수십 년을 거슬러 속편을 제작할 탄탄한 역사를 지닌 할리우드의 필모그래피, 그리고 말썽쟁이였으나 끝내 모범시민으로 거듭난 남성 캐릭터는 부러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언젠가 도래할 비非 남성 캐릭터의 귀환 또한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