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어〉 리뷰
발레리나, 발레리노, 아들, 딸 중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사람. 그리하여 모어(毛漁), 털 난 물고기가 된 사람. 털이라는 포유류의 속성을 지녔으나 물속을 헤엄치듯 살아가는 사람. 드래그 아티스트로 사는 ‘행복한 끼순이’ 모지민을 수식하는 말과 이름이다.
모지민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1978년에 지방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날 때부터 ‘치부(남성 성기)’를 달고 세상에 기어 나왔고, 이는 불행의 시작이 되었다.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종종 괴롭힘을 당하던 학창 시절이었지만 이상은의 노래에 맞춰 춤출 때만큼은 행복했고, 발레를 접한 후에는 날개를 단 듯한 희망을 맛보았다. 아버지는 없는 살림에 100만 원의 빚을 내 그녀에게 발레복을 사줬다. 그녀의 희망은 한예종 입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학의 한 선배는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모지민의 뺨을 세게 때렸다. ‘여성성을 버려라’는 요구와 함께. 어렵게 품은 희망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한 그녀는 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는 커밍아웃을 해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어 격리된 채 군 생활을 했다.
이태원은 그녀에게 허락된 마지막 공간이었다. 트랜스젠더 클럽이자 드래그퀸들의 공연장 ‘트랜스’. 트랜스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힐을 신고 가발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말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드래그는 신의 창조물”이라고.
모지민에게는 드래그만큼이나 중요한 대상이 또 있다. 바로 그녀의 오랜 연인 제냐다. 러시아 출신인 제냐와의 관계는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제냐는 비자 문제로 한국에 안정적으로 머물 수가 없는 상황이고 모지민이 품은 슬픔과는 또 다른 깊은 슬픔을 품고 있는 남자다. 그는 언젠가 모지민에게 퇴직금을 전해주며, 이를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써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소수자 혹은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늘 죽음의 가능성을 마음 한편에 품고 있기 마련인데, 체념이 깃든 너털웃음을 짓는 제냐에게서도 이를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의 갖은 어려움을 잠시 뒤로한 채 몰입할 수 있는 ‘포켓몬고’ 게임을 좋아한다는 제냐가 트랜스젠더라는 슬픔을 가진 모지민과 서로 의지하며 오랜 기간 함께 살아 나가길 바란다.
〈모어〉에는 모지민이 곳곳에서 드래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시골집, 도시의 광장, 경운기 위, 혐오세력 앞 등등. 어디든 그녀가 서면 공연장이 된다. 그녀를 거부하거나 그녀에게 상처를 준 공간에서의 드래그 퍼포먼스는 그녀가 지나온 삶의 표상과도 같다. 박수를 받을 때만큼이나 손가락질 받을 때도 많았지만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주변을 전유하는 행위로써 그녀의 퍼포먼스를 독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지민은 퀴어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속성을 함께 품은 털 난 물고기의 형상으로 춤을 추고 노래한다. 모지민의 헤엄은 더 넓은 공간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오늘도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