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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ug 15. 2022

'어용 해적'에서 '진짜 해적'으로

넷플릭스 영화 〈씨 비스트〉 리뷰


  해적은 강도, 도둑이다. 그러나 동시에 규범을 거스르고 권력 바깥에서 자유로이 항해하는 무법자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존재 자체로 권력의 빈틈을 증명한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애니메이션 영화 〈씨 비스트〉는 해적의 존재론을 영리하게 차용한 영화다.


  바다에 출몰해 어선을 공격하는 괴물(Sea Beast)들이 있다. 해적을 닮은 데가 많은 사냥꾼들은 이 괴물들을 사냥하고 왕실에서 보상을 받아 생계를 이어간다. 서로를 껄끄러워하는 왕실과 해적이 괴물 덕에 전략적 동맹을 맺고 공생하는 것이다.



  인에비터블(inevitable)호를 이끄는 선장 크로우는 사냥꾼 중 최고다. 삼 대째 사냥꾼 일을 하는 그는 거대한 바다 괴물 블러스터를 잡으려다 한쪽 눈을 잃고 늘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자부심과 복수심이 그를 최고의 사냥꾼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실이 사냥꾼과의 공생 관계를 끝내려 든다. 사냥꾼의 시대는 끝났다며 최신 군함을 건조해 자체적 괴물 사냥에 나서려는 것이다. 사냥꾼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크로우는 그가 아들처럼 여기는 차기 선장 제이콥과 사냥꾼을 한껏 동경하는 어린 소녀 메이지 등과 함께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바다로 떠난다. 낭만과 역사를 가진 사냥꾼과 신식 무기로 장식한 화려한 왕실의 경쟁 관계가 펼쳐지려는 참이다.


  익숙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전개다. 그런데 〈씨 비스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영리하게 방향을 튼다. 그 시작은 바다 괴물 블러스터가 제이콥과 메이지를 삼켜버린 사건이었다. 제이콥과 메이지는 블러스터의 뱃속에서 살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일을 마주한다. 난폭한 성격으로 인간을 공격한다고 여겨졌던 블러스터가 사실은 굉장히 순하고 착한 생명체임을, 바다 괴물들이 인간의 공격에 응수하는 과정에서 증오를 학습했을 뿐임을 알게 된 것이다.



  탁월한 사냥꾼이었던 제이콥, 그 누구보다 사냥꾼 신화를 동경했던 메이지는 ‘공인된 역사’를 체현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보지 않았던/못했던 바다 괴물들의 다른 면모들을 발견하고, 이들과 우정을 쌓아나간다. 블러스터 몸 곳곳에 박혀 있는 무기를 제거해주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신뢰를 형성하는 식이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제이콥‧메이지와 블러스터가 조심스레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적극적 매개 역할을 하는 건 어린 메이지다. 거짓되고 폭력적인 관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어린 메이지가 더 자유로운 언어로 괴물과 인간을 매개하는 것이다(유능한 사냥꾼이었던 제이콥은 블러스터와 교감하는 일에서는 오히려 무능해진다).


  제이콥과 메이지는 끝내 자신들이 새로 알게 된 사실을 모두와 공유하며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낸다. 위정자들이 통치를 위해 만들어낸 날조된 역사를 걷어내고, 상처만 남기는 전쟁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용서의 계기가 마련되어야 함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정부와 공생 관계를 맺던 ‘어용 해적’에서 기존 규범을 위반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진짜 해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씨 비스트〉는 언젠가부터 좋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은 울림 있는 메시지 전달을 인상적으로 해낸다. 정의, 역사, 평화, 용서, 대안 가족, 용기 등의 덕목을 자연스레 전달하는 이 영화는 마녀 이미지 문제적 차용 등의 몇몇 흠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당신도 제이콥, 메이지, 블러스터의 항해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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