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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ug 19. 2022

한국 액션 첩보물의 최대치

영화 〈헌트〉 리뷰


  올여름 개봉한 네 편의 텐트폴 영화 중 〈헌트〉는 가장 적은 기대를 받은 작품이었다. 〈태양은 없다〉 이후 이정재 배우와 정우성 배우가 23년 만에 재회했다는 점, 이정재 배우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 등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다른 세 편의 영화에 비해 그 기대감의 크기가 작은 것은 사실이었다. 첩보물을 보는 관객의 눈이 높아졌고, 많은 선례를 통해 연기와 연출이 전혀 다른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 걸 학습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헌트〉는 탄탄한 완성도를 갖추었다는 입소문에 힘입어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신인 감독의 연출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화려한 스펙터클과 이정재 감독이 4년간 공들여 수정했다는 각본의 촘촘함 때문일 것이다.     



  〈헌트〉는 광주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자국의 군인에게 학살된 이후 안기부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에서 출발한다. 안기부에서 각각 국내팀과 해외팀을 담당하는 박평호와 김정도는 조직 내 스파이 ‘동림’을 찾으라는 임무를 받고 서로를 의심한다. 안기부는 군부독재의 중추 역할을 했던 기관이다. 즉 안기부는 대북한 공작과 국내 ‘안정’을 책임지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런 기관에 북한의 스파이가 있고, 각 팀을 총괄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동림이라 의심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당성 없이 집권한 독재 권력의 폐부를 찌르는 설정이다. 남북한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이어온 우리 현대사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 세력은 늘 자신의 행위가 스스로에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지독한 의심증과 불안에 시달렸다. 때문에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일체감을 높이기 위해 늘 상상적/실재적 적을 만들었다. 이 폭력적이고 공허한 행위는 그들의 통치 기간 내내 반복되었다. 권력의 핵심부도 이를 비켜 갈 수 없었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 자신이 결백함을, 즉 자신은 체제의 적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한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박평호와 김정도가 서로를 동림이라 의심하며 추적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동림인가’가 아니라 의심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체제 그 자체다. 가장 단호하고 권위적으로 ‘적’을 상대해온 기관조차 스파이 색출에 여념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체제가 근본적으로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인다. 떳떳하지 못한 자들의 운명이다. 두 번째는 동림의 정체와 시대의 아픔을 액션 스펙터클과 결부한 후반부다. 광주에서의 학살, 북한의 적화통일 세력, 민간인 고문 등 시대를 특징짓는 사건들이 장르 영화의 상상력과 버무려져 긴장을 자아내는 식이다.     


  영화의 두 파트는 각각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내적 완결성을 지니는데, 〈헌트〉는 어색함이나 이질감 없이 이 두 영화를 하나로 잇는다. 그럼으로써 1980년대의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의 절묘한 포착과 장르 영화의 쾌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다. 박평호와 김정도의 이뤄지지 못한 형제애는 비극으로 점철된 그 시대 우리의 모습을 표상한다. 〈헌트〉가 현재 한국 첩보물이 선보일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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