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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ug 22. 2022

이 영화 나만 별로야? 놉!

영화 〈놉〉 리뷰


  최초의 영화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라는 게 ‘정설’이다. 조던 필이 연출한 〈놉〉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놉〉은 1878년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말을 타는 흑인 기수의 사진을 이어 붙인 2초 분량의 활동사진을 최초의 영화로 제시한다. 〈놉〉의 문제 제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설령 ‘최초의 영화’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이름만 남고 최초의 배우, 즉 흑인 기수는 기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놉〉의 주인공 OJ와 에메랄드는 이름을 남기지 못한 최초의 영화배우의 후손으로 할리우드 영화 촬영장에 말을 대는 말 목장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에 맞아 사망한다. 아버지 사후 목장은 점차 어려워지고 OJ와 에메랄드는 자금난에 말을 팔아야 할 상황에 몰린다. 이에 에메랄드가 아이디어를 낸다. 아버지 사후 종종 목장이 정전되는 등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하늘에서 서성이는 걸 보고는 이를 UFO 증거 영상으로 만들어 돈을 벌어보자는 것이다.     



두 남매의 목숨을 건 ‘촬영’이 시작된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최초의 (흑인) 배우의 후손들이 무언가를 ‘촬영’하여 돈과 명예를 얻고자 한다는 설정에서 조던 필이 〈놉〉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를 비롯해 CCTV, 수동식 필름카메라를 동원해 괴물체를 ‘촬영’하는 남매의 모습에서 우리는 영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으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소외된 자들의 인정 욕망, 상승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 아이맥스 필름 촬영으로 진행된 〈놉〉의 다채로운 촬영 방식 역시 이 영화가 불온한 영화사에 대한 조던 필의 재치 있는 항의임을 짐작케 한다(괴물체의 안에서 밖을 보는 시선이 네모 모양이라는 것 역시 카메라의 프레임을 연상시킨다).     


  영화사에서 소외된 존재를 복권하자는 〈놉〉의 야심은 영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OJ와 에메랄드가 영화 촬영장에 말을 대는 목장 일을 하고 있다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괴물체에 맞서며 ‘그 누구든 헤이우드 목장을 건드리면 작살난다’고 소리치는 에메랄드, 아무리 위험해도 목장에 돌아가 말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는 OJ,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사진‧영상 기록물을 남기는 남매와 그 동료들의 모습은 두 번 다시는 잊히지 않겠다는 소외된 자들의 결연한 선언이다.     



  〈놉〉의 메시지는 훌륭하며,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재치 있고 세련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영화에는 아쉬운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장르 영화의 재미다. ‘메시지가 담긴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메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놉〉이 적당히 만족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겟아웃〉, 〈어스〉 등으로 조던 필에게 장르 영화의 재미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놉〉에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연스레 두 번째 아쉬움으로 이어진다. 영화사를 다시 쓰겠다는 조던 필의 야심 때문인지, 〈놉〉에는 감독이 탐닉했던 여러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하다. 그리고 이 오마주들은 감독의 의도에 맞춰 배치된다. 이를 알아보는 관객은 영화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겠지만 이를 모른다고 영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교하게 의도되고 계산된 영화가 담아내는 세계는 ‘감독의 세계’일 뿐이라는 점에서 위험 요소를 갖는다. 타란티노가 연출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대표적이다. 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자신이 참조한 옛 영화의 리스트를 공개해 마니아들을 열광케 하는 타란티노의 세계는 곧 그가 본 비디오의 세계다. 이소룡이 스턴트맨에게 얻어맞는 영화, 샤론 테이트의 비극을 소재로 하면서도 그녀를 철저히 소외시키는 방식의 영화가 탄생한 건 이 때문이다. 그가 본 비디오의 세계에는 아시아인과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촘촘한 레퍼런스와 그에 대한 오마주는 해석의 즐거움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헌사라는 이유로 종종 상찬되지만, 감상자 한 명의 영화 경험 속에서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늘 철저히 심문될 필요가 있다.     


  명백히 타란티노식 창작법을 연상시키는 〈놉〉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영화가 소외된 자들의 공로를 복권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조던 필이 흑인 문제를 영화에 적극적으로 담아온 감독이라는 점에서 그의 영화 세계가 닫혀 있다는 비판은 성급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레퍼런스로 의미의 탑을 쌓아 올리는 그의 방식이 언젠가 폐쇄적 세계의 도래로 귀결될까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직은 모든 게 가정에 불과하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더 적극적으로 표출되어야 하고 오래도록 계승되어야 한다. 재능 있는 감독으로 평가받는 그가 할리우드 선배 감독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듀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구픽, 202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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