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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an 30. 2023

차이와 우정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두 교황〉 리뷰

7★/10★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얼마 전 선종했다. 신학자였던 그는 수백 년 만에 살아생전 교황직에서 물러난 교황이었다. 가톨릭 교리를 보수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해 반발을 사기도 했고, 성직자들의 성추행과 바티칸의 비리를 묵인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가톨릭 진보파를 강하게 비판했고 이슬람을 향한 공격적 발언을 이어가 ‘신의 로트와일러(맹견)’라고도 불렸다. 그의 독일 국적과 유년기에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던 일화, 홀로코스트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 등을 이유로 ‘나치’라 불리기도 했다. 여러 모로 극적인 데가 있는 교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건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이 진보파의 상징적 인물인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점이다. 프란치스코는 여러 진보적 이슈에 적극 관여하는 아르헨티나 예수회 출신으로, 교황이 된 후 자본주의적 불평등을 비롯한 여러 진보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쪼그러들어가던 가톨릭 공동체를 크게 넓히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은 정반대의 인물인 베네딕토 16세와 프렌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교회를 아끼는 마음과 우정으로 하나가 되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양극에 서 있는 두 인물이 공동의 절대적 사명(신앙) 앞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하고,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모두가 관계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품격이 담긴 영화다.


  영화는 라칭거(베네딕토 16세)가 콘클라베를 거쳐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를 꺾고 교황직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예정된 결과였고 베르고글리오 역시 교황 자리를 원치 않았지만, 라칭거가 여러 번의 투표를 거쳐서야 교황에 오른 건 분명 ‘이변’이었다. 그만큼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라칭거와 베르고글리오는 한참 뒤 또 한 번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베르고글리오는 추기경에서 은퇴하겠다는 요청을 하기 위해 바티칸행 비행기를 끊어둔 상태였는데, 때마침 교황 역시 그를 바티칸으로 부른 것이다. 진보파와 보수파의 상징과도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은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낳는다. 둘의 차이는 밀도와 품위를 함께 갖춘 대사에서도 드러나지만 몸짓과 행동 등에서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둘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가 너무도 다른 존재임을 점점 더 깊게 깨닫는다.



  베르고글리오가 추기경직에서 사임하겠다고 하자 베네딕토 16세는 단칼에 거절한다.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과 바티칸의 경제 비리 등으로 교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상태에서, 진보파인 그가 사임하면 자신에게 ‘항의’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교황의 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다. 보수적 신학자지만 동시에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는 그는 이제 교회에서 더는 자신이 할 역할이 없다는 것을 안다.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에게 교황 자리를 이어받으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그를 바티칸으로 불렀던 것이었다. 아무리 대화해도 이해할 수 없고 그의 논리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지만,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가 가톨릭의 위기를 돌파할 적임자라 판단했다. 더는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라칭거의 고백은 교황이라는 거대한 권위 뒤에 숨겨진, 그저 신을 사랑할 뿐인 개인의 고뇌를 덤덤히 전한다.


  그러나 베르고글리오는 펄쩍 뛴다. 추기경을 사임하러 왔는데 교황직을 제안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라칭거의 솔직한 고백에 그 역시 지금껏 내보이지 않은 속내를 꺼낸다. 베르고글리오에게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까지도 본국인 아르헨티나에서 군부 독재 시절 위정자들과 타협했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무자비한 군인들에게서 사제와 교인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베르고글리오는 지금도 자신의 결정이 옳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제 교황과 추기경이라는 가톨릭의 두 거인은 사라지고 고독함과 부끄러움에 괴로워하는 두 신앙인만이 남았다. 차이를 거스르는 우정의 토대는 여기서부터 쌓이기 시작한다. 보수파, 진보파라는 거대한 허울을 벗겨내자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된다. 베네딕토 16세는 기꺼운 마음으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나고 프란치스코는 무거운 마음으로 교황직에 올라 교회를 바꾼다. 두 교황을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악역'일 수밖에 없는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가히 압권이다.


  〈두 교황〉이 모든 것을 너무 아름답게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그 이면에는 거센 비난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라칭거와 야심찬 개혁가 베르고글리오가 버티고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둘이 가톨릭 역사상 가장 놀랄 만한 바통 터치를 이뤄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조금이나마 우정이 깃들어 있다고 추측하는 건 꽤 합리적이다. 〈두 교황〉은 차이와 우정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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