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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ul 27. 2023

이 감정, 사랑일까 이기주의적 욕망일까

영화 〈에고이스트〉 리뷰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잘 나가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료스케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류타. 둘은 게이라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료스케는 좋은 집에 살고, 멋지고 세련된 옷을 입으며, 자신의 고민을 함께 나눌 게이 친구들이 있다. 반면 류타는 늘 돈에 쫓긴다. 생활비와 어머니 간병비를 벌 목적으로 다른 남성에게 몸을 팔기도 한다.     


  세대와 계급, 생활 양식 등 많은 것이 다른 둘. 그러나 친구의 소개로 수강생과 개인 운동 트레이너로 만난 둘은 서로에게 빠져들어 빠른 속도로 몸과 마음을 섞으며 조금씩 관계의 깊이를 더해 나간다. 료스케와 게이 친구들, 료스케‧류타의 베드신은 게이들이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는 방식을 현실감 있게 포착한다. 그 세계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금세 이입할 수 있을 만큼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생동감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게이/퀴어 영화가 ‘아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둘의 로맨스가 중점이었다면, 후반부는 어느 날 갑자기 홀로 남겨진 료스케가 류타의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을 담는다. 료스케가 늘 화려한 옷을 입는 건 그 옷이 자신의 어릴 적 상처(게이에 대한 또래의 혐오, 어머니 상실)를 감춰주는 갑옷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류타와 류타 어머니와의 관계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 때문일까? 얼핏 감동적으로 보이는 이들 관계에서 료스케는 종종 선을 넘는 듯 보인다. 료스케가 류타에게 자신이 용돈을 줄 테니 성매매를 그만두고 내 곁에 남으라 요구하는 장면, 혼자가 된 류타 어머니에게 함께 살자고 말하는 장면을 보자. 료스케는 분명 ‘진심’이다. 하지만 무엇을 향한 진심일까? 료스케가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진심일까? 혹시 료스케의 제안은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데 대한, 치유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에 대한 진심은 아니었을까? 류타 모자에게 돈과 집을 제공하겠다는 료스케의 제안은 독립된 시민으로서 류타 모자가 갖는 자존감을 훼손할 가능성을 품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호혜성에 토대를 둔다. 일방적인 증여는 호혜가 아닌 시혜이며, 이는 보통 서로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서만 발생한다.     



  하지만 료스케는 거침이 없다. 그들이 자기 곁에 없을 때 다시 상처받은 상태로 되돌아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이들의 관계가 감동을 자아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료스케가 두 사람을 자신의 이기주의적 욕망에 포섭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료스케는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다.     


  영화가 감동과 이기심이라는 두 결의 서사를 펼쳐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두 서사는 다른 서사를 압도하지 않은 채 내내 불편한 긴장을 유지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느 서사에도 승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이기주의적 욕망의 표출’과 교묘히 섞여 있음을 보인다. 이외에도 게이 커뮤니티의 (돈을 매개한) 친밀성, 호혜와 시혜, 상실의 문제를 예측 불허한 방식으로 오고 가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많다. 〈에고이스트〉가 던지는 생산적 질문은 숙고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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