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Jul 10. 2023

또다시 걸작인 줄 알았다, 1시간 동안은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리뷰

5★/10★

 

 영화는 긴박한 소리가 오고 가는 병원 안, 검은 배경에 여성 성기의 모양의 빛이 비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엄마 자궁 속에서 처음 빛을 마주한 보Beau의 시선이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는 중인 보의 귓가에 이내 엄마의 분노 섞인 외침이 들린다. 그녀는 간호사가 아이를 땅이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간호사는 건조한 듯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답하지만, 엄마는 계속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미친 듯이 분노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애착적 분노와 함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다. 중년의 남성이 된 보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보는 심각한 편집증으로 고통받는 중이다. 그가 태어날 때 머리를 다쳤다는 엄마의 주장이 사실인 걸까? 혹 엄마의 ‘과한’ 집착이 보를 힘들게 한 것일까? 이번에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정신적 문제를 가진 보가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갈 예정이라는 점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의 계획은 꼬여버린다. 옆집에서 밤새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해도 잠을 잘 자던 보는, 누군가가 이 소음을 보의 집에서 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쪽지를 조심스레 문틈으로 밀어 넣는 아주 작은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그만 늦잠을 자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에게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늘 위협받는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집 밖에 나가기조차 수월치 않은 보가 비행기도 없이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엄마를 찾아가는 보의 여행은 기이하다. 도중에 만난,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그레이스 부부는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보를 입양한 듯 굴며 놔주지 않으려 한다. 숲속 고아들이 꾸린 극단은 보가 갖지 못한 생의 기대를 연극으로 선보여 보를 사로잡는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지 모를 일련의 여정 끝에 마침내 엄마의 집에 도착한 보. 파국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묵혀온 분노, 집착, 의존, 기대가 한데 뒤엉켜 쏟아진다. 문제는 보의 편집증적 공포보다 엄마의 집착이 더 힘이 세다는 것. 두려움에 질린 보는 엄마를 향한 물리적, 상징적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유전〉, 〈미드소마〉 등으로 전 세계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고 전해져 관객의 기대치도 그만큼 올라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르 영화의 문법을 새로이 구축해온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데 대한 기대였다. 감독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인터뷰에서 ‘외롭고 이상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에서 ‘외롭고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선보여 기쁘다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것이라 예상했다. 이왕이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논쟁 끝에 이 영화가 좋다는 사람들이 이기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이상한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맞다. 호불호가 갈릴 영화도 맞다. 그러나 영화가 좋다는 사람이 논쟁에서 이길 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호불호’ 차원이라기에는 단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보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영화의 만듦새가 상당하다. 보가 느끼는 현실의 여러 공포와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촘촘하고 단단하게 펼쳐져 흡인력을 높인다. 현실과 망상 사이에서 분열하며 괴로워하는 보의 캐릭터는 이유는 다르더라도 저마다의 문제를 겪는 모든 동시대 관객을 영화 속 보의 위치로 이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여정이 있고, 그 여정에는 늘 기대와 두려움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여정을 떠나기 전인 보의 위치에 대한 관객의 동일시에서만큼은 분명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정작 보의 여정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를 향한 관객의 동일시가 어려워진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가 너무 과잉이라는 데 있다. 재능을 인정받은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낼 본격적인 기회를 얻었을 때 종종 발생하는 문제다. 절제 없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버리는 것이다. 메시지와 이미지의 과잉은 보와 같은 위치에 섰던 관객을 하나둘씩 밀어낸다. 결국 보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영화 전반부에서 모두를 끌어들인 흡인력의 기반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보 캐릭터를 어린아이(미성숙)처럼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자꾸 눈에 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지 않은 전반부에서는 그의 연기가 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보가 ‘혼자’가 된 후반부에서는 그의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종종 거슬린다. 다소 난삽한 여정 끝에 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장 극적이어야 할 영화의 결말 역시 김이 빠진다. 보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지만, 그 감정은 관객에게 별다른 감정을 자아내지 못한다. 한국의 관객이라면 〈신과 함께〉 시리즈에 대한 기시감으로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요컨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관객이 자연스레 보의 시점에 이입하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메시지와 이미지의 과잉으로 관객을 보의 여정에 끝까지 동참시키지는 못한다. 어쩌면 감독의 세 번째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를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웃' 터지는 현실 풍자 코미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