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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ul 03. 2023

'현웃' 터지는 현실 풍자 코미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리뷰

7★/10★


  여섯 편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로, 개별 완성도와 전체 완성도가 고루 준수하다. 영화 속 ‘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절묘하게 포착해 ‘현웃’과 풍자적 웃음 모두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대기업 과장과 중소기업 CEO가 말을 나눈다. 둘은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관심사는 같다. 노조 분쇄, 불만을 품은 직원 가스라이팅……. 문제는 같은 생각을 하는 둘이 속으로는 서로를 경멸한다는 것. 겉으로는 서로에게 동의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까지 살고 싶으냐’고 비아냥대던 둘은 어느새 목소리와 마음의 소리를 착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드문드문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방청객 웃음소리는 TV 시청자의 관점으로 관객을 초대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면서도 가장 앞장서서 그 명령을 수행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상대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헤어진 연인이 주인공이다. 조금은 꽉 막히고 소심해 보이는 남자와 그런 남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구는 여자. 동거하던 이들은 얼마 전 헤어졌지만, 아직 정리하지 못한 최대 쟁점이 남아 있다. 함께 키우던 고양이를 누가 데려갈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것.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에게 고양이를 넘기려던 둘은 ‘말’의 교류를 통해 점차 자신에게 고양이, 그리고 상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이 고양이를 데려가야 할 이유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무 자르듯 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를 ‘말’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그다음은 임신한 딸과 아빠의 이야기다. 아빠는 광주로 이사를 앞둔 딸이 서울에서 출산하길 바란다. ‘전라도 사람’이라서 받는 차별에 익숙하기에 손주에게 ‘서울 본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딸은 그런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며 지나간 시대의 차별에 굴복해 아이의 본적을 결정할 순 없다고 답한다. 논리정연한 딸의 언변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주장을 철회하는 아빠. 그러나 반전. 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표정으로 ‘엘사’(임대주택 거주자를 비하하는 표현) 아이들과 자기 단지 내 아이들을 같은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다는 청원서를 들고 싱긋 웃는다. 딸의 말에 설득당한 아버지는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짓는다. 부녀의 대화는 차별의 범주가 동시대에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인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남성 혐오’ 표현 사용 논란의 표적이 된 반려동물 간식 회사를 배경으로 한다. 홍보 담당자가 반려동물이 간식 먹는 소리를 ‘허버버법’이라고 표현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팀장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정돈된 사과문을 써서 발표하고 싶지만, 실무자는 엉뚱한 좌표 찍기에 사과하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둘이 숨 막히고 속 터지는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허버버법’에서 시작된 ‘남혐’ 논란은 얼토당토않은 곳까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둘은 끝내 처음 게시물을 작성한 직원의 반려동물이 정말로 ‘허버버법’ 소리를 내며 간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되도 않는 시빗거리가 초래하는 멘붕에 관한 현실 밀착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프러포즈가 진행 중인 한 파티룸에서 전개된다. 남자는 남들이 했다는 건 다 끌어모아 ‘완벽한’ 프러포즈를 준비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건 없다.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여자는 진땀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남자를 보는 게 영 불편하다. 망해버린 프러포즈 후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둘. 마침내 여러 어려움에도 사랑하기로 결심한 커플은 행복하게 파티룸을 나선다. 그 격정의 드라마 이후 남은 수많은 ‘예쁜 쓰레기’들을 치우는 직원의 무관심하고 뚱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그 커플이 잘 되든 말든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마지막은 야근이 일상인 회사에서 회사 사정으로 직원 한 명에게 휴직을 제안해야 하는 팀장과 열악한 노동 환경이 불만인 직원의 대화다. 직장인들이 으레 주고받는 의미 없는 말들이 오고 간 후, 휴직과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각자의 용무가 표면화되자 갈등이 고조된다. 심지어 팀장대화 중인 직원이 신입이던 시절 성추행까지 일삼았다. 이 에피소드는 둘이 까칠한 말을 주고받는 상황과 온화한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의 두 버전으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태도야 어쨌든 결과는 같다. 노동 착취와 성희롱이라는 팩트는 변하지 않기 때문. 약자에 대한 강자의 구조적 착취는 ‘태도’의 문제로 해소될 수 없다.     


  영화를 보며 작품이 포착한 우리 현실의 이율배반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뻔뻔함에 종종 웃음이 터졌다. 현실에 대한 지독한 농담과도 같은 이 영화를 ‘감상’하지 않고 우리의 ‘거울’로 삼는다면, 윤리적 인간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앞뒤가 다른 인간이기를 면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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