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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ug 07. 2023

우정의 얄궂은 속성

〈여덟 개의 산〉 리뷰


8★/10★


  절친한 친구는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서로의 굴곡을 직접 살아줄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파고가 있다. 기를 써도 안 풀리는 때가 있고, 모든 일이 수월히 진행될 때도 있다. 우정의 얄궂은 속성은 여기서 생긴다. 나의 고점과 저점이 친구의 것과 겹치지 않고 서로 엇갈릴 때 말이다. 친한 친구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때로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낀다. 반대 상황에서는 괜한 분노와 열등감이 차오르기도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관계 맺어온 관성으로 인해 현재의 ‘격차’가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다. 얄팍한 우정은 이 엇갈림을 견디지 못한다. 반대로, 이런 고비를 연달아 넘기는 우정은 그만큼 단단해진다. 이것이 결함 많은 인간이 맺는 우정의 속성이다.     



  〈여덟 개의 산〉은 이 주제를 처연한 아름다움을 담아 완벽에 가깝게 풀어낸다. 이야기는 1984년 이탈리아의 한 산골 마을에서 시작한다. 도시에서 외동으로 자란 피에트로는 여름방학을 맞아 한 산골 마을의 별장에 머물고, 그곳에서 브루노를 만난다. 브루노는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떠나 황량해진 마을에 남은 유일한 아이였다.     


  금세 가까워진 둘 사이 첫 번째 변곡점이 찾아온다. 피에트로의 부모는 머리가 좋은 브루노가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상황을 아쉬워하며, 벽돌공으로 일하는 브루노의 아버지에게 그의 도시 유학을 제안한다. 하지만 브루노 아버지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브루노는 도시에서 교육받으며 자신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피에트로와 달리,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육체 노동자라는  정해진 길을 걷는다. 이후 둘은 십수 년간 만나지 못했다. 만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같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서로가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트로는 과거 자신이 브루노를 도시로 데려오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데 미안함을 느끼고, 브루노는 어쩌면 자신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삶을 살아가는 피에트로를 부러 냉담하게 대한다.     



  그리고 두 번째 변곡점. 이번에는 상황이 반대다. ‘쓸모 있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거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에 매진한 피에트로는 방황하는 중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공부하고 익힌 것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다. 반면 브루노는 피에트로가 갖지 못한 단단한 안정감을 가진 듯 보인다. 육체노동자 특유의 실용성은 피에트로가 결코 갖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자신이 갈등하며 대화조차 하지 않은 기간에 브루노가 그 역할을 대신 해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가 호감을 가졌던 여성 라라마저 브루노의 아내가 된다.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일뿐 아니라 아들, 남자 역할까지 브루노에게 뒤처진다는 느낌이 피에트로를 괴롭게 한다.     


  〈여덟 개의 산〉은 찰나의 어린 시절을 빼고는 늘 엇갈리기를 반복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담히 좇는다. 혼란스러운 순간마다 서로에게 우주가 되어 친구의 삶에 질서를 부여해주고 혼란을 정돈해주는 이들 우리에게 우정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우리는 결코 친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때로는 자기 세계에 처박힌 친구의 답답한 모습에 가슴을 치고, 때로는 친구가 건넨 진정어린 조언의 날카로움에 깜짝 놀라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불완전하게나마 그 곁에 진심을 다해 머물 순 있다. 그 모든 시간이 쌓이며 우리는 친구가 된다.     



  이탈리아의 한 산골 마을의 풍광은 둘의 우정을 위한 완벽한 무대다. 한적한 산골 마을의 광활한 사계는 무던한 아름답다. 이 풍광은 오랜 시간 생의 문제와 씨름하며 우정을 쌓는 피에트로, 브루노와 대비를 이룬다. 마치 초연한 태도로 버티고 서서 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이 겪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말이다. 동시에 두 사람 우정의 최후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정이란 개인의 의지와 진심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쩌면 필연적 한계를 가진 인간들의 악전고투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일이 절대 하찮지는 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평화를 얻었다. 보잘것없을지라도, 우리는 관계 맺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중이다. 피에트로가 브루노에게 그러하듯이, 브루노가 피에트로에게 그러하듯이.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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