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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ug 03. 2023

'자해하는 여자'가 운명을 헤쳐가는 두 가지 방법

영화 〈비닐하우스〉, 〈러브 라이프〉 리뷰

6★/10★

〈비닐하우스


  문정은 종종 자해를 한다. 푹 수그리고 앉아 자기 뺨을 연달아 때리는 것이다. 문정이 찾은 무료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완치가 목적이라며 작위적 밝음으로 모임을 이끈다. 그러나 문정이 부러 ‘무료’ 모임에 찾아온 데서 알 수 있듯, ‘완치’는 불가능하다. 가난이 병인데 심리 상담이 가난을 해결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정의 아들은 소년원에 들어가 있다. 남편과는 이혼한 듯 보인다. 생계는 한 노부부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여 해결한다. 남편은 후발 시각 장애인이고, 아내는 중증 치매다. 그 집에서 문정은 꽤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다시 가난이 문제다. 문정은 비닐하우스에 산다. 혼자라면 그럭저럭 버틸 만하겠지만 아들이 곧 출소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고자 하는 문정에게 비닐하우스는 가당치 않다. 그래서 문정은 자주 집을 보러 다닌다. 산뜻한 새 출발의 장소가 되어줄 아파트를 보러 다니는 순간만이 문정을 웃게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 문정이 돌보던 여성 노인이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신고하려던 문정은 이내 마음을 바꾼다. 지금 신고하면 목전에 둔 ‘완치’가 모두 물거품이 된다. 문정의 머릿속에 두 노인의 치매와 시각 장애가 곤란한 상황을 모면케 해주리라는 생각이 스쳐 간다. 당연히 녹록지는 않다. 문정은 이 와중에도 마찬가지로 치매인 친엄마를 돌봐야 한다. 집단 상담에서 만난 순남이 문정의 호의에 기대 자꾸 적정선을 넘어 문정의 삶에 들어오려 하는 것도 신경을 거스른다. 과연 문정은 할머니의 죽음을 숨기고 아들과 함께 원하던 미래에 안착할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은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을 연달아 마주한 문정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자기 자신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욕망했을 뿐인 그녀가 마주한 파국의 가능성. 다시 한번, 완치는 요원해진다.          


*영화가 장애를 활용하는 방식은 고민이 필요하다. 치매, 시각장애, 지적장애가 문정 범죄의 알리바이가 되어준다는 점은 그럴듯하지만, 장애를 그저 플롯상의 도구로 편하게 차용한 것은 아닌지를 고민케 한다.




6★/10★

〈러브 라이프


  타에코는 재혼한 여성이다. 전 남편이 도망치듯 떠난 후 아들 케이타와 함께 현 남편과 새 가정을 꾸렸다. 세 사람은 꽤 잘 지내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타에코와의 결혼 이전, 현 남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또 다른 여성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미혼이었다. 이래저래 타에코가 고운 시선을 받을 리 만무한 상황이다. 그러던 중 사고가 나 케이타가 세상을 떠난다. 타에코는 장례식장에서 머리를 벽에 박으며 자책/자해한다. 설상가상, 케이타의 소식을 접한 전 남편이 되돌아와 타에코를 마구 흔들어놓는다. 타에코는 가난하게 생활하는 청각장애인 전 남편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현 남편은 그런 타에코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이 무수한 엇갈림 끝에 타에코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타에코가 복귀한 일상은 이전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타에코는 두 집안 모두에서 정성스레 ‘아내, 며느리 역할’을 수행했으나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은 적은 없다. 타에코가 복귀한 일상에 ‘평온’이 아닌 ‘체념’의 정서가 깃든 듯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삶과 운명은 무심한 잔혹함으로 우리를 뒤흔든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운명에 저항하거나 운명의 폭력적 속성을 받아들이거나. 영화는 후자의 길이 ‘삶을 사랑하는 것(LOVE LIFE)’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길에서 ‘자책/자해’는 무용하다. ‘네 잘못이 아니야’의 기이한 운명애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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