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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27. 2023

윤리와 미학을 결합한, 당나귀의 여정

〈당나귀 EO〉 리뷰

6★/10★


  영화는 불연속적이고 파편화된, 그래서 단번에 그 정체를 인식하기가 어려운 붉은 조명 아래의 서커스 장면으로 시작된다. 관능적인 몸짓을 선보이는 여성 단원 카산드라에 뒤이어 당나귀 EO가 나온다. EO는 서커스단 소속이자, 카산드라의 공연 파트너다. 그러나 얼마 뒤 동물 서커스가 동물 학대라고 말하는 시위대가 등장하고, EO와 카산드라가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서커스단을 떠난 후 EO가 경험하는 무수한 폭력(혹은 폭력으로 점철된 모험)에서 알 수 있듯, 서커스단과의 결별은 EO에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동물권 단체와 EO의 그리 산뜻하지 않은 만남은 EO가 마주할 모험의 방향성을 일러준다. 이후 EO가 마주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목적과 기분에 따라 EO를 대한다. 개중에는 조금 괜찮은 사람도 있고, 끔찍한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본질은 같다. 동물권 보호 단체가 초래한 역설은 이를 집약해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암시다. EO가 서커스단에서 착취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이들은 서커스단에서 나온 EO가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EO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식이다. 마구간, 농장, 인간이 늑대를 사냥하는 숲, EO를 ‘구조’한 소방대원, 훌리건, 동물 병원, 모피 사육장, 살라미 공장행 트럭, 백작 부인의 저택, 공장식 사육장/도축장……. 인과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EO의 여정은 영화의 실험적인 연출과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하나의 은유가 된다. 영화는 EO가 잇따라 마주하는 인간과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백작 부인의 저택에서 그녀가 자신의 의붓아들이자 도박중독자인 신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자. 언뜻 어머니가 아들을 나무라는 듯 보이지만, 이 시퀀스가 끝날 때쯤 갑자기 둘의 관계가 성애적일 수 있다는 암시가 드러난다. 돈 많은 백작 부인과 그녀의 타락한 성직자 의붓아들, 그리고 이들의 모호한 관계. 인간 관객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하지만 EO는 그렇지 않다. EO에게는 경기장에 등장한 EO 덕에 승리했다고 믿는 축구 팬(그리고 같은 이유로 EO를 원망하고 학대하는 상대편 훌리건)과 백작 부인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EO를 스쳐 가는 사람들을 그저 보여줄 뿐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을 상대화한다.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않는 인간들이 동물인 EO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슬픔 자아낼 뿐이다.


  영화는 다양한 연출 기법을 활용하여 이러한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핸드헬드, EO의 시야에 맞춘 카메라워크, 붉은빛의 색감과 동물 형태의 로봇을 활용한 화면 구성 등등 영화는 예술, 미학적 실험을 반복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윤리와 미학이 별개의 영역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윤리적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미학적 요소에 둔감할 때가 있고, 미학적 영화는 종종 윤리를 들여오는 것을 정체성의 훼손으로 여긴다. 그러나 〈당나귀 EO〉에서는 윤리와 미학이 서로를 지탱한다. 미학적이고 실험적인 요소를 적극 들여옴으로써, 그래서는 안 된다는 당위로만 자리 잡았을 뿐 진지하게 고민되지는 않은 동물에 대한 인간종의 폭력을 고발하고, EO의 시각에서 인간종의 특권을 상대화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요컨대 〈당나귀 EO〉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EO의 관점을 환기한다.



  영화의 마지막, EO는 소떼와 함께 있다. 공장식 사육장/도축장으로 보이는 곳이다. EO가 인간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왔는지, 자발적으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EO가 소떼 무리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환멸을 교대로 느끼며 걸어온 모험의 끝, EO는 최종적으로 죽음의 공간에 도달했다. 감독의 말마따나 이 영화가 “냉소적이고 냉담한 사회에서 ‘순진해 빠졌다’라고 여겨지는 순수함”에 관한 영화라면, EO는 동물에 대한 인간종의 폭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폭력적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마주하는 비극적 결말 대한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이 영화의 접근이 관객의 마음에 남긴 기괴한 흔적은 그리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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