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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06. 2023

[BIFF]판빙빙×이주영,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조합!

부산국제영화제, 〈녹야〉


녹야/Green Night

Hong Kong, China/2023/92min

한슈아이 감독/'갈라 프레젠테이션' 세션


  5일 오후 2시, 부산 KNN타워 KNN시네마에서 〈녹야〉 기자회견이 열렸다. 〈녹야〉는 한슈아이 감독이 연출하고 판빙빙, 이주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을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이다.     


  〈녹야〉는 여성 로드무비다. 인천항 여객터미널 검색대에서 일하는 진샤(판빙빙). 그녀는 어딘가 지쳐 보이는 얼굴이다. 진샤의 얼굴에는 짜증과 권태를 넘어선 체념의 표정이 깃들어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초록머리(이주영)가 나타난다. 평범한 옷차림이지만 그를 뚫고 나오는 에너지를 가진 초록머리는 표정과 행동(그리고 이를 비추는 카메라 워크)에서부터 자신이 진샤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임을 암시한다.


     

  진샤는 영주권 취득 문제로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고, 초록머리 역시 마약을 유통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몰래 이를 운반하는 일을 하는 중이다. 즉 그녀들은 모두 남자에게 구속당하는 동시에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여자의 만남은 어떠한 변화를 촉발해낸다. 그리고 새로이 시작된 변화에서 두 사람은 남자를 매개하지 않은, 즉 위태롭지만 매혹적인 날 것의 자유를 마주한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조용한 성격의 진샤와 모든 일에 즉흥적이고 본능대로 행동하는 초록머리. 영화는 가난과 폭력 속에서 살아온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로드무비의 질감을 과감하고 풍성하게 담아낸다. 지금껏 대체로 화려하고 강단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판빙빙이 수수한(혹은 초췌한) 맨얼굴로 선보이는 감정 연기와 진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주영의 새로운 매력이 잘 어우러지는 영화다. 〈녹야〉는 퀴어 캐릭터의 재현, 과도한 상징과 암시, 여성 로드무비 클리셰의 반복 등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녹야〉의 과한 선명성은 〈델마와 루이스〉 이후 수없이 변주되어온 여성 로드무비를 아껴온 장르 팬들에게는 장르의 문법과 상징을 극대화하여 최대치로 맛보게 해주는 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배우와 감독은 한목소리로 조심스럽고 얌전한, 마음에 숨긴 게 많은 여성 진샤와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의 초록머리가 서로에게 끌리며 겪는 변화를 이 영화의 매력 요소로 꼽았다. 이 모든 걸 설득해내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다. 판빙빙은 〈녹야〉가 “여성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영화”라며, “여자들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를 직면하고 해결하며 다른 여성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녹야〉를 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는 그녀는 영화가 서로 다른 두 여성의 관계를 다룸으로써 사랑을 한층 더 다원적으로 발전시켜 표현했다는 점에 만족감을 표했다.     


  기존과는 다른,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때로는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초록머리를 연기한 이주영은 〈녹야〉 출연 제안을 수락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여자가 고난을 헤치고, 달려 나가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를 보고 싶고,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녹야〉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출연 여부를 고민하던 중 판빙빙의 진심을 담은 손 편지 덕에 〈녹야〉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열정을 전달받아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이던 시기에 촬영했기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녹야〉는 스토리와 메시지뿐 아니라 제작 과정 역시 하나의 도전이었다. 판빙빙은 이 어려움을 이겨낸 현장 스태프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는 점을 들어 〈녹야〉를 완성해낸 힘도 여성의 역량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진샤와 초록머리가 마주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이며, 만연한 (남성) 폭력 앞에서 둘은 종종 무너지고 때로는 꺾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둘 만의(여성들만의) 경험과 감정에 기반해 전에 없던 초록빛 밤을 만들어냈다. 여성 로드무비의 2023년판 버전이자 판빙빙, 이주영 두 배우의 변신과 케미가 빛나는 〈녹야〉, 2023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이 화제작을 부산에서 즐겨보길 권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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