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을 보고 난 후,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고 적힌 포스터의 질문에 “그래도 당신만큼 이상하진 않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인공 기홍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말 못 할(혹은 인지하지도 못한) 이상한 구석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이 기홍의 이상함에 있는 듯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종종 짜증을 유발하는 기홍의 이상함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 이상한 남자가 먹고사는 방식과 주변 사람과 어울리는 방식에도 주목한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기홍에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거나 그가 사회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즉 기홍의 이상함에는 별다른 변명거리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손가락질받기 쉬운 한국 남성의 부정적 전형성을 대체로 모두 갖추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기홍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대신, 그저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그를 좇는다. “무관심했거나 혹은 미워했거나 심지어 두려워했던 타인이라 할지라도 긴 시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과연 기홍의 이상함을 다르게 바라볼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중년의 문턱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는 기홍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 목수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2년쯤 됐고, 그전에는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이 남자, 거슬리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피아노 학원 인테리어 공사 중, 빠른 임금 지급을 요청하는 연장자 일용직에게 반말로 소리를 지른다거나 젊고 예쁜 피아노학원 원장에게 슬쩍 말을 놓으며 작업 중 쉬는 시간에 피아노를 쳐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라! 기홍의 친구 경준은 왜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묻지만, 기홍은 ‘네가 아직 노가다 세계를 몰라서 그런다’라고 핀잔을 준다. 다른 노동자들은 학원 원장의 피아노 연주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녀와 혹시라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은 기홍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디 이뿐인가. 직장을 다니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기홍은 자기 수입을 말도 안 되게 부풀려 과장하고, 술집에서 합석한 초면의 여성에게는 대뜸 집에 놀러 오라고 어설픈 수작을 건다.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는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부모님과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동생을 두고 매정한 태도로 자리를 떠 가족을 속상하게 한다. 기홍의 이 모든 이상함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톤으로 그려진다. 그를 부러 나쁘게 보이게 만드려는 인위적 목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기홍의 리얼함은 여기서 나온다. 대부분의 출연진을 비전문 배우로 채운 것도 이러한 연출 의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것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일상의 모습을 닮은,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장면들이 현실적인 톤으로 펼쳐진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긴다. 어느 날 자신의 승합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알게 된 기홍은 블랙박스를 통해 피아노 학원 공사 중에 누군가가 학원 건물에서 차 위로 뛰어내렸다는 걸 확인한다. 기홍은 그가 월세를 살고 있는 집주인 정환과 함께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길가에서 블랙박스에 촬영된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찾은 기홍은 자백을 받아내고 수리를 맡기려 그와 함께 카센터를 방문한다……. 그러나 이 일련의 사건들은 플롯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상함을 지닌 기홍이 다른 사람과 만나 관계 맺을 계기를 마련해주는 보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 직장이 없어 울적한 집주인 정환과 정환의 부인 현정, 기홍의 친구이지만 그와는 다른 결의 무게감을 가진 경준, 그리고 어딘가 선량한 구석이 있는 용의자 하나. 이들은 모두 나름의 이상함이 있다. 정환은 실없게 굴며 기홍에게 다가와 용의자를 찾는 일을 돕고, 하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황당해하면서도 기홍에게 거리 두지 않는다. 경준은 허세만 잔뜩 깃든 친구 기홍과는 달리 성실하고 묵직한 태도로 차근히 일을 해나가려는 인물이다(요즘 같은 때, 이런 태도는 분명 ‘이상’하다). 하나는 충분히 기홍의 추궁을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이 범인이 맞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수리비까지 지불하겠다는 책임감을 보인다(마찬가지다).
기홍은 이들과의 관계에서 대체로 자신의 그 못난 이상함을 반복한다. 기홍의 이상함은 상대의 이상함과 맞물려 종종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면 그 이상함은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기홍의 이상함이 그렇듯 종종 해로운 효과를 자아낼지라도 말이다. 이상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이상한 케미는 자신에게 이상한 구석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상한 구석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상함의 이유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케미는 종종 그들의 이상함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차를 망가뜨린 용의자를 찾던 기홍은 막상 하나가 눈앞에 나타나자 마음이 약해진다. 하나가 자기 잘못을 적극적으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본 후 기홍은 형편이 좋지 않은 하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싶다. 이외에도 영화에는 문제 많은 기홍의 의외의 면모에 마음이 열게 되는 몇몇 순간이 있다. 이 열림은 우리 모두가 이상하다는 것을 불가피한 조건으로 받아들인 이후에 가능해진다. 만약 기홍의 이상함을 너무 성급히 본질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그를 계속 바라보기를 거부했다면 이 열림의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케미를 온전히 갈무리하지 않은 채 끝난다. 그저 눈살 찌푸려지는 한 남자의 이상함이 언제나 문제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그런 그에게도 종종 “다르게 보일” 만한 면모가 있다고, 그리하여 이 불편한 남자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는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그쪽만큼 이상하진 않습니다만 마음은 조금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