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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Nov 09. 2023

어디 금쪽이만 문제이던가

〈독친〉 리뷰

6★/10★


  딸이 죽었다. 혜영의 사랑스러운 딸 유리는 다른 시체 2구와 함께 한적한 호숫가 바로 옆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를 동반자살 사건으로 본다. 그러나 혜영은 경찰의 수사가 어처구니 없다. 혜영은 유리가 자살했을 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유리는 아침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로 등교했다. 평소에 공부도 곧잘 했고, 학교에서도 반장을 맡는 드 모범적 생활을 이어갔다. 혜영은 유리의 ‘불량스러운’ 친구 예나가 딸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 본다. 어딘가 못 미더운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사건의 비밀을 오래 숨기지 않는다. 유리가 엄마 혜영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음이 금세 드러난다. 갑자기 선한 표정을 거두고 살벌한 표정으로 친구에게 욕을 한다거나, 아이돌 연습생 친구 예나가 전해준 우울증 약을 엄마 몰래 복용한다거나, 엄마 몰래 세컨폰을 사용한다거나. 혜영은 유리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유리에게 주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100퍼센트 확신한다. 그래서 혜영은 유리의 반항을 허용하지 않는다. ‘널 위해서’, ‘너 좋으라고’ 하는 통제가 끝도 없이 반복된다. 아주 자그마한 반항의 시도만 있어도 날 선 통제가 가해진다.     



  혜영이 미리 확정해둔 유리의 세계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유리가 자살한 이유 역시 조금씩 ‘납득’된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혜영이 유리의 친구 예나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혜영이 보기에 아이돌 연습생 예나는 유리에게 도움이 될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딸을 위해 설계해둔 미래를 결정적으로 훼손할 방해꾼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유리를 통제하려 든다. 문제는 예나가 유리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는 것. 유리는 엄마 앞에서는 방긋 웃는 착한 딸을 연기하고, 뒤돌아서는 엄마를 경멸‧증오하는 얼굴로 동반자살을 계획한다. 경찰의 수사로 사건의 진실을 마주한 혜영은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렸지만, 사랑하는 딸 유리를 죽인 건 혜영 자신이었다.     


  혜영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을지 모른)다. 결혼 정보회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우리 사회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긴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등급이 낮게 매겨진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리를 높은 등급의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혜영 딴에는, 유리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혜영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을까? 예나는 유리의 죽음 이후 큰 상실감에 빠진다. 선생님은 유리를 추모하면서도 내심 자신에 대한 혜영의 고소가 취하됐다는 데 더 큰 안도를 느끼는 것 같다. 혜영은 유리에게 했던 짓을 어린 아들에게 반복한다. 아들은 악을 쓰며 죽은 누나를 데려오라고 소리친다. “누나가 없으니까 이제 엄마가 나를 괴롭히잖아!” 결국 죽은 유리를 진정으로 애도하고 추모한 건 혜영이 그토록 미워했던 예나뿐이다.     


  혜영을 악마화‧병리화하는 방식으로 〈독친〉을 읽어내는 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혜영이 유별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동시대의 부모는 모두 혜영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의 자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이나 행동의 정수는 본래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금쪽이도 문제지만, 금쪽이를 자기 소유로 여기는 양육자도 문제다. 그들이 ‘아이를 위해’ 통제를 사랑이라 생각한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을 고려했을 때, 이런 유의 사랑이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건 더더욱 큰 문제다. 혜영의 눈과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다. 〈독친〉은 장르에서나 메시지에서나 스릴러일 수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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