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랜드〉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이더르의 형수는 아들을 낳기 위해 네 번의 임신을 했으나 막 태어난 넷째 역시 딸이다. 아버지는 하이더르가 남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염소 도축을 지시하지만 하이더르는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메이크업 일을 하는 아내 뭄타즈와 달리 하이더르는 몇 년째 백수 상태여서 아버지와 형은 그를 은근히 무시한다. 가부장제가 살아 숨쉬는 그의 가족에서 가사노동을 돕고 조카들을 돌보는 하이더르는 번듯하지 못한 존재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취업 자리를 제안한다. MTF 트랜스젠더 댄서 비바의 백댄서 일이다. 안 그래도 남성성을 의심받고 조롱당하는 하이더르는 춤을, 심지어 트랜스젠더 뒤에서 출 수는 없다고 거절하지만 그러기에는 보수가 너무 크다. 가족 내 낮은 지위를 단번에 보상해줄 만큼 큰돈 앞에서 하이더르는 결국 댄서 일을 수락한다. 하이더르가 일자리를 얻자마자 아버지와 형은 뭄타즈의 경제 활동을 금지한다. 얼마 후 뭄타즈는 남자아이를 임신한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가사노동을 하는 가부장제의 질서가 복원된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부장제가 재확립되었음에도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역설이 생긴다. 하이더르는 열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댄서 비바에게 매혹되고, 그가 댄서로서 큰 인기를 얻는 데 공헌하자 비바 역시 하이더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집에만 머물며 답답함을 느끼는 뭄타즈 역시 새로운 욕망에 눈을 뜬다. 밤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며 자위하는 남자를 몰래 훔쳐보며, 그 역시 자위를 시작한다. 하이더르와 비바의 일상과 친밀성은 아버지와 형이 구획한 질서와 조화하지 못하고 은밀한 곳에서 조금씩 그 궤적을 넓혀나간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가부장적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아버지는 행복할까? 아버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배우자가 죽은 옆집 여자와 서로에게 이끌린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고, 심지어 같이 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옆집 여자의 아들은 그런 짓은 집안의 수치라며 극렬히 반대하고,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피던 아버지도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옆집 여자에게 더는 자신을 방문하지 말라고 선언한다.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보다 체면과 규범이 더 중요할 뿐이다.
도대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가부장제의 덕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하이더르의 형 정도인 듯 보인다. 직장이 있고, 자식이 있으며, 육체적 힘도 아직 상실하지 않은 나이의 장남. 그렇다고 그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는 딸만 넷이기에, 하이더르와 뭄타즈 부부가 아들을 낳는다면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대의를 상실할 것이다. 즉, 가부장제가 공고한 이 가족에서는 아직 천진한 아이들을 빼고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하이더르와 뭄타즈는 끝내 자살한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늘 행복할 자격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가부장제를 더 이상 온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뭄타즈는 아들을 품은 채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억지로 직장을 그만두고, 집 안에서도 감시당하는 자신에게 미래는 없음을 감각한 뒤의 선택이다. 하이더르도 마찬가지다. 비바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것이 실은 남몰래 숨겨둔 자신의 게이 욕망의 어긋난 발현이었음을, 즉 비수술 트랜스젠더인 비바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표출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하이더르에게도 미래는 없다. 가부장제하에서 퀴어 정체성이 불우하게 교차하는 장면이다. 더불어, 서로를 아꼈던 하이더르와 뭄타즈가 결혼 전 나눴던 짤막한 대화, 즉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집안 어른들끼리 결정한 결혼을 두고 두 사람이 가족 몰래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대화가 끝내 두 사람의 자살로 귀결된다는 것은 가부장제가 조그마한 숨구멍을 뚫어놓는 정도로는 견디기 어려운 체제임을 폭로하기도 한다. 누구도 온전히 행복할 수 없지만 누구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가부장제의 동시대적 곤경과 그로 인한 파국이 밀도 높은 드라마로 형상화된 〈조이랜드〉를 향한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유수 영화제의 호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