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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흑인 여성’에 대한 정치적 탐구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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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글입니다.


“Why are you so angry?” 영화 속 대사처럼, 나도 팬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만 싶다. 중년의 흑인 여성 팬지는 늘 예민하다. 편집증적이다. 강박을 보인다. 짜증을 달고 산다. 그녀는 늘 억하심정과 피해의식에 짓눌려 있다. 항상 편두통에 시달리고 몸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팬지 역을 연기한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배관공 남편과 백수 아들은 완전히 체념한 것 같다. 반면 팬지의 동생 샨텔과 그녀의 가정은 정반대다. 미용사로 일하는 샨텔은 손님과의 관계에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능숙하고, 두 딸과도 화목하게 지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샨텔의 집은 식물로 가득하다. 아주 자그마한 이물질이나 벌레도 견디지 못해 늘 집 밖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오염’을 촉발할 물건은 집 안에 두지 않는 팬지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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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팬지가 처음으로 취약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샨텔과 어머니 성묘를 다녀온 후다. 팬지는 피곤하다고 고백한다. 이제 늘 긴장 상태로 자신을 옥죄여 오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 늘 단답으로만 대답하며 팬지의 속을 태우던 아들 모지스가 어머니의 날을 맞아 꽃다발을 사놨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팬지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아들이 준 꽃을 화병에 옮겨 담는다. 바닥에는 꽃다발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지만 상관없다. 때마침, 모지스에게도 길을 지나던 한 활달한 여성이 말을 걸어오며 변화가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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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남편은 조금만 집을 더럽혀도 난리를 치는 팬지에게 완전히 지친 상태다. 하지만 팬지의 변화를 반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팬지가 화병에 옮겨 놓은 꽃을 집 밖으로 던져버린다.


도대체 왜? 세삼스레, 팬지 가정과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샨텔의 집에는 남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른다. 샨텔과 그녀의 두 딸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팬지처럼 굴지 않는다. 한편 팬지 때문에 탈진한 듯 보이는 그녀의 남편은 어쩌면 팬지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일 변화를 무참하게 되돌린다. 팬지에게, 그의 가족에게 어떤 변화도 허락되어선 안 된다는 듯이. 이제 왜 팬지가 늘 화가 나 있는지를 알 것만 같다. 남편의 마지막 행동으로 모두가 자신을 무시하고 공격한다는 그녀의 ‘느낌’에 상당한 경험적 근거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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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직후에는, 이 영화가 ‘분노한 흑인 여성’의 널리 퍼진 이미지를 개인화해 재현한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화가 났다. 단지 아들이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서, 팬지가 정말 단지 ‘예민’해서 이 모든 일이 생겼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곱씹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영화는 ‘분노한 흑인 여성’의 전형적 이미지를 굉장히 첨예한 정치의 문제로 다룬다. 이 영화에서 그 정치가 작동하는 영역은 가정과 가족이다. 지치고 늙어가는 남성조차 집 안의 변화를 물 샐 틈 없이 통제하고 단속할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은 가부장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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