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고 힘 있는 남자가 유아기적 퇴행에 시달릴 때
영화 〈폭스캐처〉(2015), 〈포드 V 페라리〉(2019)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는 헨리 포드 2세의 열등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포드 사社는 페라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사람들은 늘 페라리를 최고로 여긴다. 헨리 포드는 페라리를 인수하여 포드가 갖지 못한 것, 즉 '이미지'를 얻으려 하지만 모욕만 당한다. 그래서 레이싱 대회에서 포드의 이름을 건 차가 페라리를 이기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비유하자면, 헨리 포드 2세는 졸부가 절대 갖지 못하는 귀족의 품격을 갖고 싶어 한 것이다.
〈폭스캐처〉(2015)도 비슷하다. 존 E. 듀폰은 거대 화학 회사의 상속자 겸 회장이지만 늘 인정 욕구에 시달린다. 사회적 지위와 달리 그의 정신은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추측건대, 이미 궤도에 오른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그는 자신이 위대한 가문의 일원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듯하다. 그래서 평판에 집착한다. 연출된 것이라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그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
듀폰의 선택은 레슬링을 후원이었다.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열악한 대우에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마크 슐츠는 듀폰의 후원에 감동한다. 탁월한 레슬링 선수이자 코치인 마크 슐츠의 형인 데이브 슐츠도 곧 듀폰의 레슬링팀에 합류한다. 팀의 이름은 ‘폭스캐처(foxcatcher)’. 그러나 듀폰과 마크, 데이브 형제는 끝내 ‘여우잡이’에 실패한다.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한 듀폰의 동기가 모든 일의 시발이었기 때문이다.
듀폰은 데이브가 폭스캐처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자신의 권위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마크와의 관계도 틀어져 그가 연출하고자 한 ‘자애롭고 강인한 레슬링 코치’의 이미지도 점차 흔들린다. 듀폰은 결국 통제력을 잃고 무너진다. 〈폭스캐처〉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면 그 결과가 파멸일 수 있음을 소름 끼치도록 건조하게, 그러나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포드 V 페라리〉, 〈폭스캐처〉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못난 남자의 과도한 욕망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라는 점도 같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포드 V 페라리〉에는 헨리 포드 2세의 심술을 뚫고 나오는 레이서들의 감동적인 서사가 있다. 하지만 〈폭스캐처〉의 듀폰은 자신의 파멸을 대가 삼아 그 가능성의 싹을 자른다. 정신의 유아기적 퇴행에 시달리는 돈 많고 힘 있는 남자들의 욕망이 정반대로 귀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연과 운명의 관계를 이처럼 잘 보여주기도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