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게임〉 시리즈
〈헝거게임〉 시리즈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비평은 이제 익숙하다. 언젠가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은 우후죽순 쏟아졌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은 간단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자본주의의 투명한 환상이 응축되어 있다. 현실은 공정하지 않지만 오디션은 ‘공정하다.’ 누구나 지원 가능하고, 지원자들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평가받는다. 개인은 누구나 완벽하게 공정한 자유경쟁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불공정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최면을 건다. 현실세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공허한 이상이 흥미로운 오락거리로 소비될 때, 대중들이 소비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는 환상이다. 실패는 노력·능력 없는 개인의 몫이다. 체제의 문제를 개인의 자책으로 돌리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은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문제는 언더독이다. 언더독은 오디션의 필수 흥행 요소다. 언더독은 그 명칭부터 공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누군가는 자원의 부족으로 경쟁에 필요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더독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자본주의의 거짓 환상을 교란한다.
핵심은 희망이다. 언더독도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가 공정하다는 거짓 환상은 더욱 공고해질 수도 있다. 언더독의 희망이 ‘적절히’ 관리된 경우다. 그러나 언더독의 존재는 불공정한 체제의 증거로 기능하기도 한다.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는 두 번째 가능성을 탐구한다.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12개 구역은 매년 남녀 한 쌍을 선발해 ‘헝거게임’에 출전시켜야 한다. 최후의 1인만 생존한다. 부유한 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헝거게임 우승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각종 훈련을 받지만 가난한 구역 거주민에게 헝거게임 출전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난한 12구역 출신 캣니스 에버딘은 예정된 운명을 거스르고 헝거게임에서 우승하여 영웅이 되고, 혁명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대중은 캣니스의 우승을 거짓 환상의 충족이 아닌 욕망 변혁의 기호로 읽었다. 기존 체제가 소수에게만 제공하는 '성공'을 희망하기보다는, 위험하더라도 기존 질서를 거스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상징으로 캣니스를 독해한 것이다.
혁명의 시작부터 완결까지를 다루는 〈헝거게임〉 시리즈 4편은 스토리가 간단하고 명료하다. 혁명과 혁명에 수반되는 고뇌를 깊이 있게 다뤘지만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SF ·액션이라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단순해질 필요도 있다. 여전히 공정성이 문제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언더독의 승리가 변화보다는 기존 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진 상황에서 〈헝거게임〉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덧. 소리로만 죽어나간 캣니스의 경쟁자들이 유독 신경 쓰였다. 헝거게임에서는 참가자가 죽을 때마다 경기장 안에 특정한 소리가 나온다. 그들의 죽음은 소리로만 들린다. 캣니스가 획득한 혁명의 자격은 소리로만 죽음을 알릴 수 있었던 희생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리로만 흩어진 존재들의 삶을 복원해 혁명의 자원으로 삼는 영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