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서트〉
주석은 영화 촬영장의 인서트 감독이다. 주석은 남들이 배우를 찍을 동안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갈 산과 강,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촬영장에서 주류를 이루는 리듬, 문법에서 소외되기 쉬운 조건이다(주석을 본 배우는 “인서트 감독, 그런 것도 있어요?”, “별 감독이 다 있네”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외는 기회이기도 하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 인지하지 못한 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고 다른 리듬을 체화해 고유성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추현은 그런 주석이 포착한 무언가다. 강가를 촬영하던 주석의 카메라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그녀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주석은 황급히 그녀를 구하고 그녀는 얼결에 촬영팀에 합류한다. 죽고 싶었다는 추현의 말과 달리, 어쩌면 그녀는 주석의 카메라에 들어오기 위해 혹은 영화팀에 합류하기 위해 물에 걸어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무명 배우인 그녀가 그날의 사건 이후 단편을 연출해 상을 받은 적도 있는 주석과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살갑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을 보며 그런 의심이 들었다.
주석은 추현과 하룻밤을 보낸 후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그에게 재앙일지도 모른다. 주석은 변덕스럽게 구는 추현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어울리지도 않는 유행하는 옷을 사고, 남들이 다 가난 카페와 식당에 줄을 선다. 인서트 감독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 그러니까 추현이 ‘일부러’ 그의 카메라에 들어갈 만한 이유를 스스로 걷어차는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아, 이 가련하고 멍청한 남자. 왜 그는 자신과 추현 마음에서는 인서트로 담을 만한 순간을 포착하지 못할까. 어긋난 마음의 갈래에서 길을 잃은 주석에게 필요한 건 인서트 카메라의 방향을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리는 일이 아닐까.
한편, 감독의 전작 〈부모 바보〉에서 이어지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동시대 청년 남성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작에서 사회 복지사 현진은 자신의 퍽퍽한 삶을 자조(‘좆밥’)하면서도 이 정도면 ‘평타’는 치지 않냐고 묻는 동시대적 남성이다. 주석은 돈 안 되는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 ‘걸작’을 만들고 싶다. 두 영화에서 30대 언저리의 남성들은 계속 현실의 비루함을 돌파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한다. 두 사람 모두 밖에서 보면 조금은 우습고 허술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보면 나름대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는 두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인 ‘영화’라는 기표를 의미화하는 방식에 있다.
〈부모 바보〉에는 현진이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이 있다. 보다 보면 다 그 영화가 그 영화 같긴 한데, 또 그래도 계속 보다 보면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는 내용이다. 〈인서트〉의 주석은 직업과 꿈이 영화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영화의 제작 현장에서 추현과 자신만의 영화를 펼쳐낸다. 두 사례에서 모두 ‘영화’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 실용적 가치가 없는 것, 어딘가 무용한 것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두 영화가 ‘영화’를 의미화하는 방식은 현진과 주석이 현재 겪는 어려움과도 연동되어 있다. 사회 주류의 욕망에 완전히 쓸려가기도, 이를 완전히 거부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에서 머뭇거리다 낙오되고는 한다는 것이야말로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