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작 리뷰 1
Mathias Broe/Denmark/2025/105/Color/Drama/Danish, Swedish, English/‘월드 프라이드’ 섹션
▶게이 남성과 트랜스 남성의 섬세한 탐색과 각자의 결핍
영화는 요한이 게이 사우나에서 조심스레 상대를, 다른 게이들의 섹스를 살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가 세심한 탐색에 관한 영화라는 점에서 아주 적당한 오프닝이다. 요한은 시골에서 대도시로 올라와 게이 사우나의 직원으로 일하는데, 종종 여기서 오는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던 중 데이팅 앱으로 트랜스 남성 윌리엄을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요한이 윌리엄과 관계를 맺으려면 기존의 관계 공식을 새로 확립해야만 한다. 윌리엄이 아직 수술하지 않은 데서 오는 수치심을 배려하며 섹스와 관계를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트랜스 남성이 게이 커뮤니티에서 ‘남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편견, 트랜스는 동성애자일 수 없다는 사회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익숙함을 넘어서 구축한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는 서로 다른 결핍의 내용으로 조금씩 허물어진다. 윌리엄은 트랜스 동성애자 남성으로서 결핍과 수치심을 느끼지만, 요한은 시골 출신의 가난한 게이 남성으로서 갖는 결핍과 수치심이 있다. 요한은 이 차이를 느낄수록 더더욱 윌리엄에게 집착하지만, 윌리엄은 그런 요한이 부담스러워 밀어낸다. 결국 집착으로 결핍을 보충하려던 요한의 시도는 실패하고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서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게이 사우나에서 시작되어 트랜스 남성과의 동성애 관계로 이어지는 섬세한 관계 양식의 정립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얼마나 다종다양한 결핍으로 스스로와 어렵게 구축한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는지를 보여주는 수작. 2025 선댄스영화제, 2025 밴쿠버퀴어영화제 상영작.
Harry Lighton/UK/2025/107min/Color/Drama/English/‘개막작’
▶복종에 발기하라
소심한 청년 콜린. 어느 날 그 앞에 게이 바이커 커뮤니티의 리더 레이가 나타난다. 레이를 본 콜린은 단번에 엄청난 끌림을 느낀다. 레이도 그런 콜린을 알아보고 길들인다. 단순한 욕구 해소 그 이상이다. 레이는 섹스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콜린을 자기 발 아래 두는 진정한 돔(Dominator)으로 군림하고, 콜린을 완벽한 섭(Subordinator)으로 복종하며 레이를 기쁘게 한다. 콜린은 종종 현타를 느끼기도 한다. 하우스 섭이 되어 완벽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레이를 섬기는 게 과연 ‘사랑’인지를 고민하는 것. 그러나 복종에서 오는 레이의 인정과 친밀함의 희열이 더 크다. 레이의 바이커 커뮤니티에서 훌륭한 노예로 인정받는 기쁨도 마찬가지로 크다.
사랑하는 아들이 ‘폭력적’ 관계에 노출되어 있는 게 불편한 콜린의 시한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건 하나의 계기다. 콜린을 둘러싼 ‘건전한’ 상식이 복종에 기반한 친밀한 관계에 더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계기 말이다. 이제 콜린은 완전히 지배와 복종에서 오는 친밀성에 (자발적으로) ‘종속’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틀어진다. 레이의 강아지가 된 콜린이 주인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면서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 레이는 언제 또 이런 섭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표정으로 슬퍼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콜린은 황망하게 홀로 남는다. 그러나 레이가 그에게 심어준 복종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복종에 발기하고 복종에 사랑을 느끼는 콜린은 자기를 돌봐줄 또 다른 주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오토바이의 뒷좌석(pillion)에서, 콜린은 사랑과 욕망의 완전한 해방을 맛봤다.
Ludvig Christian Naested poulsen/Denmark/2025/82min/Color/Drama/Danish
▶언젠가는 지나갈 집착의 순간
크리스티안은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아스커와의 연애. 아스커와 헤어진 후 크리스티안은 애정결핍의 상태에 괴로워한다. 결국 괴로움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데이팅 앱으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계속 답장이 없자 가짜 계정을 만들어서라도 만나려 한다. 그러나 모든 게 어그러지고 결국 아스커가 자주 가는 클럽으로 직접 찾아간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안은 아스커가 즐겨 마시던 술을 주문해 다가가지만, 냉담한 반응만을 마주한다. 크리스티안은 술잔을 몰래 화장실로 들고 가 그 안에 사정한다. 아스커가 그 술을 마신다면, 그의 위장 속에서라도 정액으로 상대를 점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아스커는 그 술마저 마시지 않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를 기록한 행복한 영상과 크리스티안의 피폐한 현재를 교차시키며 둘 사이의 차이를 대비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크리스티안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듯한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마치 길고 긴 집착과 좌절의 순간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으로 극복된다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