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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Dec 31. 2020

블루스, 흑인 그리고 다시 블루스

넷플릭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2020)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2020)는 음악 영화의 얼굴을 한 흑인(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이는 제작과정과 블루스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짧은 다큐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못다 한 이야기>를 보면 더 명백해진다.


  흑인 여성 마 레이니가 블루스 가수로 명성을 떨친 시기는 대형 레코드 회사가 성장하던 1920년대였다. 대형 레코드 회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수익이 될 만한 음악을 찾았다. 그러던 중 남북 전쟁 후 시카고로 몰려든 흑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흑인 음악가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들은 ‘인종 음반(Race Records)’에 참여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인종 음반은 흑인의 문화적 역량을 널리 알리고 흑인 음악가에게 경제적 안정성을 가져다줄 기회였다. 그러나 동시에 백인 자본에 흑인 음악을 헐값에 파는 일, 즉 흑인 정체성을 상실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것이 마 레이니와 동료들이 모인 시카고의 한 녹음 스튜디오를 둘러싼 긴장감의 정체다. 그날, 끓어오르던 건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흑인 음악의 정체성·미래에 관한 질문도 임계점에 다다라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콧대 높고 제멋대로인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가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 도착한다. 음반회사의 백인 직원들은 쩔쩔맨다. 그들은 마 레이니가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준다. 마 레이니가 거만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이유와 레코드 회사의 직원들이 이를 다 받아주는 이유는 같다. 이들은 모두 마 레이니의 목소리가 돈이 됨을 알고 있다.


  한편 지하에서는 마 레이니의 밴드가 리허설 중이다. 그런데 레니가 말썽이다. 젊은 트럼펫 연주자인 레니에겐 음악적 야망이 있다. 그는 마 레이니의 음악이 낡았으며, 자신의 젊은 감각을 담은 음악이 곧 히트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밴드 구성원, 마 레이니와 계속 충돌한다. 마 레이니는 레니가 자신의 젊고 매력적인 애인인 흑인 여성 더시를 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음악이든 연애든, 둘 사이의 긴장은 점차 부풀어 오른다.


  승자는 마 레이니다. 그녀는 녹음을 무사히 마치지만, 레니는 자신의 음악을 푸대접하는 레코드 회사 직원에게 모멸감을 느낀다. 마 레이니는 명성을 유지하지만, 레니는 모멸감을 이기지 못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마 레이니가 유명한 가수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녀는 흑인 정체성을 레코드 회사에 팔아넘긴 가수였을까? 그렇지 않다. 마 레이니는 자신의 흑인·음악 정체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 레니가 백인 레코드 회사에 착취만 당하다 경력을 끝낸 것처럼, 마 레이니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기 목소리의 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계약에 서명했다. 레니가 자기 음악을 고집하며 다른 밴드원과 갈등하는 것처럼, 마 레이니도 자기 음악에 대한 자부심으로 레코드 회사의 백인 직원들이 건네는 조언을 깡그리 무시했다.


  요컨대, 마 레이니는 대형 레코드 회사가 상징하는 주류의 세계에 편입되었으면서도 자신의 색깔(소수자 정체성)을 잃지 않고 유지했다. 마 레이니가 ‘퇴물’이 되면 목소리를 무기 삼은 투쟁도 끝장날 테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한 그녀는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


  흑인이 작곡한 곡을 헐값에 산 후 백인 밴드에게 녹음시키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 만연했던 시대에도 마 레이니는 자기 정체성을 지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음악 영화의 얼굴을 한 흑인 영화인 동시에 흑인 영화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 영화다. 음악 영화와 흑인 영화의 구분이 서로를 닮은 블루스와 흑인의 역사 앞에서 허물어지는 것이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블루스 서사와 흑인 서사의 겹침을 매력적으로 영상화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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