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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an 02. 2021

우리의 소원이 현실이 되면, 세계가 망한다?

영화 〈원더 우먼 1984〉(2020)

  볼거리는 전편만 못하고, 신파를 극의 전개 요소로 삼은 건 진부하다. 그럼에도 〈원더 우먼 1984〉는 좋은 영화다. 이 영화는 150여 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포기해야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한다. 주제뿐만 아니라 이것이 촉발하는 질문(우리의 욕망은 올바른 곳을 향하고 있는가?)도 매력적이다.


  1980년대, 박물관에서 고고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원더 우먼 다이애나와 그의 동료 바바라는 돌덩이 하나를 접한다. 둘은 이를 시답잖은 모조품으로 여겼으나 그 돌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보물이었다. 다이애나가 뒤늦게 돌의 위험성을 알게 된 때는 이미 사업가 맥스가 이를 가로챈 뒤였다.


  맥스는 그 돌을 무기 삼아 부와 권력을 쌓는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는 돌의 힘을 빌려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고 그 대가로 더 큰 부와 권력을 얻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맥스는 자신의 힘을 선한 데 쓰지 않는다. 다시 한번, 원더 우먼이 나서 세상을 구할 때다.


  다이애나 역시 돌의 힘을 빌려 사랑하는 사람 스티브를 되살렸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소원으로 얻은 것, 즉 스티브를 포기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스티브와 작별한다. 다이애나의 포기는 자기 소원의 파괴적 결과를 마주한 사람들의 포기로도 이어진다. 이 거룩한 가르침을 위해 온갖 신파가 동원되는 점은 아쉽지만, 메시지의 울림은 꽤 묵직하다.


  다소 계몽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보다 흥미로웠던 건, 우리 모두의 소원이 실현되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초래된다는 영화의 가정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소원이 이뤄지지만 세상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난 혼란에 사로잡힌다. 그들의 소원이 부자, 유명세, 강력한 힘, 국제적 패권, 살인 충동 등에 그쳤기 때문이다.


  모두의 소원이 실현되면 다 같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추론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인간의 소원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만 나아갈 리 없다. 모두의 소원이 이뤄진 결과가 파국인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이 품은 욕망과 그러한 욕망을 품게 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원더 우먼 1984〉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상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슬픈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다.


  물론, 원더 우먼은 겉으로 드러난 혼란을 훌륭하게 정돈했다. 하지만 왜곡된 우리의 소원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히어로가 필요하다. 초인적 능력을 지닌 영화 속 슈퍼 히어로를 포함하여, 그 어떤 위대한 인물도 실패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선한 것’을 욕망하도록 하는 일은 이토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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