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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후기, 세 번째

〈마젤란〉〈극장의 시간들〉〈무관한 당신들에게〉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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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

라브 디아즈 | 2025 | Fiction | Color | DCP | 163min

해외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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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이 바다 위에서 마주한 절대적 고독과 그에 포개지는 불만과 불안


기독교의 사명 혹은 식민주의적 욕망 그리고 향신료의 경제성. 마젤란은 이 모든 것이 종합된 무언가에 추동되어 항해를 나선다. 이 영화는 그런 마젤란의 내밀하고 연약한 속살과 비밀을 가만히, 건조하면서도 극적으로 들춘다. 망망대해의 고요 속에서 절망에 젖은 선원들과 ‘자연에 반하는’ 행위(항문 성교)로 사형당하는 선원, 선박 위에서의 권한 다툼과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는 신부를 버리는 일 등등. 영화는 위대한 모험가인 동시에 한계 많은 인간 마젤란과 그 동료들이 바다 위에서 마주한 절대적 고독과 그에 포개지는 불만과 불안을 인상적으로 포착하고 재현한다.


육체적, 심리적 한계에 부딪힌 이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 세부. 영화는 마찬가지로 선주민들의 삶과 관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두 세계/관의 접촉이 자아내는 긴장감으로 나아간다. 마젤란은 꽤 성공적으로 포교하던 중 선주민들의 계략에 휘말려 한 부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사망한다. 평생의 절박한 꿈, 바다 위에서의 기나긴 고통, 찰나의 영광 뒤에 허망한(혹은 정당한?) 죽음을 배치해 마젤란의 여러 면모 중 하나만을 강조하지 않고 관객이 그의 삶을 반복해 사유하게끔 한다. 절망과 숭고가 교차하는 잔잔하지만 강렬한 인상의 영화다.




극장의 시간들

이종필,윤가은,장건재 | 2025 | Fiction | Color | DCP | 95min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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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우리는


씨네큐브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세 감독의 영화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 먼저 이종필의 〈침팬지〉는 과거 세 친구가 침팬지와 영화를 매개로 공유한 기이한 시간을 몽환적으로 회고한다.


윤가은의 〈자연스럽게〉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내뿜는 놀라운 생기를 신묘할 정도로 생생하게 포착하는 감독이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디렉션을 주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영화다. 예닐곱의 어린이들이 마을과 산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촬영하는 장면을 담아내는 메타 영화인데, 마지막에 아이들이 어린이 배우들이 극장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는 장면을 배치하며 또 한 번 영화와 현실을 중첩시킨다. 마치 양쪽에 마주한 거울 사이의 존재가 무한히 서로를 비추듯, 영화와 현실 역시 서로를 반영하며 반향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이 영화의 형식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일은 결국 촬영장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할 때 가장 잘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자연스럽게 겹친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윤가은은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또 한 번 놀라운 생그러움을 끄집어낸다. 아이들과 작업하는 모든 예술은 윤가은의 작업물과 작업 방식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장건재의 〈영화의 시간〉은 춘천에 사는 중년 여성 영화가 오랜만에 광화문을 거니는 하루와 영화관 노동자들의 일상을 가만히 포개, 우리는 영화관에서 어떻게 만나 무엇을 보는가에 대한 따뜻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텅 빈 극장에는 청소 노동자, 영사기 기사, 티켓 매니저의 노동이 있고, 이들의 노동으로 우리는 편안하게 영화를 본다. 영화관은 중년의 두 친구가 오랜만에 재회하는 곳,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휴가를 쓰면서까지 봐야 할 무언가가 있는 곳,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영화를 보다 깜빡 졸아도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곳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보다는 영화‘관’에 대한 애정을 잔뜩 담아 만든 따뜻한 영화다.




무관한 당신들에게

김태양,손구용,이미랑,이종수 | 2025 | Fiction | Color+B/W | DCP | 50min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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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에 대한 경외와 실험정신이 공존하는 프로젝트


한국 영화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은 1955년에 발표한 〈미망인〉 딱 한 작품만을 남겼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여성 신자가 주인공이다. 죽은 남편의 친구가 신자에게 연정을 품고 다가오지만, 신자는 젊은 남성 택에게 마음을 열고, 택과의 사랑을 위해 딸을 다른 곳에 맡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택은 그런 신자를 버린다. 신자만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망인〉은 필름 소실로 마지막 10여 분의 음향이 들리지 않는다.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미망인〉이 제작된 사회적 맥락과 사라진 소리를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4년에 개봉한 영화 〈미망〉의 일부를 재편집한 것으로 시작한다. 동시대의 영화 평론가가 곧 문을 닫는 극장에서 〈미망인〉 상영회 후 GV를 한다. 그러고는 〈미망인〉의 주인공이 걸었을 길을 걷는다. 뒤이어 〈미망인〉 본편 상영이 이어지고, 이후에는 〈미망인〉의 결말을 재해석한 세 편의 영화가 이어진다. 첫 여성 감독의 영화이자 전후 여성 욕망을 다룬 〈미망인〉의 서사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사에 대한 경외와 실험정신이 공존하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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