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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an 26. 2021

예술, 스포츠 그리고 낭만적 순수함

〈플로렌스〉(2016), 〈독수리 에디〉(2016)

'순수한' 열정의 효용


  〈플로렌스〉와 〈독수리 에디〉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각각 형편없는 실력의 성악가, 스키점프 선수다. 하지만 이들은 천재나 압도적 기록만이 이름을 남기는 영역에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예술과 스포츠에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다. 그것은 낭만적 순수함이다.


  2차 대전 즈음의 미국. 플로렌스는 음악을 사랑하는 부유한 여성이다. 아마추어 성악가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녀가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는 걸 모른다는 데 있다. 남편, 음악 선생, 피아노 연주자는 적당히 호응하며 플로렌스의 비위를 맞춰준다. 그러던 중 플로렌스가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플로렌스가 카네기홀에 오른다는 건, 더 이상 가족과 지인들의 입에 발린 칭찬에 보호받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카네기홀 공연 후, 주변 사람들은 플로렌스가 신문의 신랄한 비판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혹평에 충격을 받은 플로렌스는 기절해버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끝내 생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 플로렌스는 말한다. “사람들이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할 순 없다.” 18살에 만난 첫 남편에게 매독이 옮은 플로렌스는 50년간 기적적으로 생을 이어왔다. 그녀를 버티게 한 건 노래에 대한 사랑이었다. 매독으로 인해 남편과 관계를 가질 수 없는 플로렌스는 매일 밤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사랑하는 남편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음악은 그녀가 비극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번에는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이다. 스키 선수 선발에서 탈락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으려던 에디는 1929년 이후 영국에 스키점프 선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에디는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키점프 선수가 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서 피어리를 만난다. 피어리는 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재능만 믿고 우쭐대다가 팀에서 퇴출당한 선수다. 피어리는 에디에게서 포기하지 않는 의지, 스키점프에 대한 사랑을 본다. 둘 다 피어리가 갖지 못한 것이었다.


  에디의 도전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언론은 에디의 열정을 우스갯거리로 소모하기 일쑤였다. 에디가 올림픽 이전에 한 번도 뛰어보지 않았던 90미터 점프대에 오르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진지함을 증명하고 싶다.


  플로렌스와 에디가 공유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향한 낭만적 순수함이다. 실력이 형편없어도, 남들이 비웃어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시작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건 남들의 평가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다.


  조금 망설여지기도 한다. 피어리가 이성애적 남성 욕망을 도구 삼아 에디를 훈련시키는 것, 플로렌스의 성별이 그녀의 비극을 배가시킨다는 것은 ‘순수한 내면의 열정’조차 젠더화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면의 목소리 그 자체를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의 가치를 정량화된 것으로만 평가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코스메 맥문이 표상하는 것


  〈플로렌스〉에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그는 플로렌스의 피아노 연주자 코스메 맥문이다.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오디션을 거쳐 플로렌스의 연주자가 된다. 그러나 적당한 돈벌이에 기뻐하던 맥문은 이내 고민에 빠진다. 플로렌스가 카네기홀에 오르기로 하자 피아노 연주자로서 자신의 평판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맥문은 플로렌스를 향한 비웃음이 자신에게도 향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플로렌스를 북돋아준다. 그가 없었다면 플로렌스의 도전도 없다.


  영화에는 깡마른 맥문이 무거운 아령을 들고 낑낑대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맥문이 플로렌스 사후 보디빌딩에 관심을 가져 보디빌더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비실한 몸으로 무거운 아령을 드는 맥문은 재능이 없음에도 성악과 스포츠를 사랑했던 플로렌스와 에디를 닮았다. 그리고 맥문이 결국 보디빌더 심사위원이 됐다는 건 플로렌스와 에디의 순수함이 항상 실패로만 귀결되지는 않음을 증명한다. 인간에게는 아직 숫자에 잠식당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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