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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an 30. 2021

흑인이 미국민이냐는 오래된 물음

넷플릭스 영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2020)

  넷플릭스 영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분쟁지역에 투입되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로봇의 ‘자율적’ 선택, 인간성과 로봇성의 모호한 경계 등이 영화의 주된 질문이다. 별로 새로울 건 없다.


  나는 다소 엉뚱한 장면에 꽂혔다. 로봇인 리오는 흑인의 얼굴을 했다. 가장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미국 국방부는 왜 미국을 대표하는 로봇의 얼굴로 흑인을 선택했을까? 리오가 답한다. 군부가 흑인 얼굴이 중립성을 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소수자성을 표상하는 흑인의 얼굴이 적과 협상·대화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데 심리적 우위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흑인 로봇은 백인 국가 미국의 폭력성을 완화해주는 얼굴로 선택되었다.


  이 장면은 흑인과 미국 국민의 자격에 관한 기묘한 물음을 촉발한다. 레즈비언 흑인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는 1983년 그레나다를 다녀온 후 한 편의 글을 썼다. 그레나다는 남미 북단 카리브해의 조그마한 섬나라다. 로드가 그레나다를 방문한 때는 미국이 공산화를 막겠다며 그레나다를 침공한 후였다.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정치적·군사적 실험을 감행했다. 그들의 물음은 간단했다. 미국의 흑인 군인은 다른 나라 흑인에게 총을 겨눌 수 있을까? 인구 대다수가 흑인인 그레나다에서 미국의 흑인 군인은 과연 명령을 제대로 집행할까? 그레나다에서 자행된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앞으로 수없이 전개될 ‘제3세계’의 군사작전에 흑인 군인을 믿고 투입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예비적 실험이었다.


  로드에 따르면, 이 독특한 실험은 미국의 허락 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나라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를 전시함으로써 자국의 흑인을 향해 경고를 보낸 것이기도 했다. 백인의 국가인 미국에서 도를 넘는 흑인의 폭력은 무참하게 짓밟힌다는 섬뜩한 경고 말이다.


  40여 년 가까이 흘렀지만 흑인과 미국의 관계는 오드리 로드의 시대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바뀐 게 있다면 정치적·군사적 실험에 동원되었던 흑인 군인이 적을 안심시키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군인으로 활용된다는 점 정도다.


  하지만 흑인 이미지가 미국의 폭력을 감추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걸 진보라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흑인의 얼굴이 더욱 교묘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미국의 폭력을 전시하고 집행하는 데 동원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것이 지루하고 특색 없는 영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흑인은 여전히 온전한 미국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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