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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Feb 16. 2021

장이머우(장예모)와 중국의 무의식

〈연인〉(2004)부터 〈삼국-무영자〉(2018)까지

  〈영웅: 천하의 시작〉(2002)부터 〈삼국-무영자〉(2018)까지.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은 일관되게 중국의 국가적 욕망을 독특한 영상미로 재현해왔다. 핵심은 간단하다. '비극이 있을지라도, 하나의 중국이 되자. 그리고 적과 맞서 싸우자.' 그의 영화에서 개인의 비극은 국가통합의 극적인 효과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슬플지라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영웅: 천하의 시작〉은 진시황이 황제에 오르기 전, 즉 그가 통일 군주가 되기 전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압도적 실력의 세 자객을 모두 처리했다는 ‘무명’이란 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진시황은 그가 자신에게 접근해 암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걸 간파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며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나 무명은 결정적인 기회가 왔음에도 진시황을 죽이지 않는다. 그가 ‘이제는 천하 통일로 평화를 성취할 때’라는 진시황의 대의에 설득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가진 진시황이 지독히 외로운 존재임이, 그가 천하를 통치할 만한 통찰력(즉, 황제의 자격)을 지녔음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최고의 무공을 갖춘 네 명의 고수가 합심하고 분열하는 과정과 천하 통일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는 과정이 ‘비극을 딛고 일어선 제국’이라는 형식으로 버무려지는 것이다.


  〈연인〉은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에서 출발한다. 세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는 아련하지만, 그들이 반란세력 '비도문'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슬픔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재현된다. 슬프더라도 개인의 비극은 과거로 흘러가야만 한다. 그래야 중국이 하나 될 수 있기에.


영화 〈황후화〉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황후화〉(2006)의 주인공은 비극적 운명을 마주한 가족이다. 개별 주인공의 상황은 저마다 절절하지만, 그들의 비극보다는 제국의 안위가 먼저다. 영화는 설득을 위한 도구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활용한다.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 스케일을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의 당위성과 권위를 확립하는 것이다. 황제는 그 역시 비극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로 모든 '혼란'을 정리한다. 그가 가족의 안위를 챙기는 일보다 제국의 위용을 세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양귀비: 왕조의 여인〉(2015)은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당나라가 있었음을 노골적으로 선전한다. 다만 내부의 분열로 스러졌을 뿐이다(여기서 '국가 통합'을 요청하는 〈연인〉, 〈황후화〉의 메시지가 다시금 부각된다). 


  장이머우의 영화에 '도전자 의식'이 드러나는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통합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누군가와 싸우기를 시도한다. 싸움의 대상은 〈그레이트 월〉(2016)처럼 미지의 적이거나, 〈삼국-무영자〉(2018)처럼 더 강력한 세력이다.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장이머우가 싸우고자 한 대상이 미국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내부의 혼란을 정리한 중국은 이제 도전자가 되어 미국의 패권을 앗아오려 한다. 그리하여 추락한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려 한다. 그들에겐 중국이 세상의 주인이었던 시기가 역사의 대부분이고, 아편전쟁 이후의 굴욕은 역사의 '예외상태'다.


  장이머우는 역사를 다시 '정상' 상태로 돌리고자 하는 중국의 욕망을 독특한 영상미로 옮겼다. 자기만의 영상미를 통해 비극을 형상화해내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 탁월함을 '제국 중국'을 위한 병풍으로만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함은 빛을 잃는다.


  장이머우 감독을 보면 개인의 재능이 국가 이데올로기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있다. 비극을 감각하는 그의 탁월함, 독특한 영상미를 만들어내는 그의 탁월함은 국가·제국 이데올로기와 결합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빛바래게 했다.


  장이머우 영화 주인공들의 비극이 제국의 병풍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활용할 때, 병풍에 박제된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의 서사뿐만이 아니다. 감독의 재능 역시 병풍에 박제된 채 생동하기를 멈춘다. 비단 주제의식뿐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부터 낡고 고리타분해진 그의 영화가 다시 생기를 얻으려면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병풍으로 만든 과거의 선택과 단절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탁월함이 빛날 수 있다. 제국의 욕망이 아닌 삶이 주인공이 되는 장이머우의 영화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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