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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Feb 21. 2021

보편이 된 장르물, 서부극

〈그 땅에는 신이 없다〉, 〈카우보이의 노래〉〈뉴스 오브 더 월드

  미국의 19세기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극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장르영화다. 그러나 고정된 장소와 시간을 무대로 하는 서부극의 특수성은 이 장르를 보편적 장르로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황량한 벌판 위에서 말馬, 총과 함께 무언가를 지키고 빼앗기 위해 외로이 걸어 나가는 인물의 형상은 인간 실존과 닮은 데가 있다.


  게다가 서부극은 끝없는 혁신을 거쳐 동시대와 대화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장르로 거듭났다. 서부극은 보편을 꿈꾸는 장르영화의 모범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그 땅에는 신이 없다〉(2017)와 넷플릭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2020), 〈뉴스 오브 더 월드〉(2021)를 통해 서부극의 사그라들지 않는 생명력을 살펴보자.


  7부작 드라마 〈그 땅에는 신이 없다〉는 1880년대의 콜로라도를 배경으로 한다. 로이 구드는 악명 높은 갱단 두목 프랭크 그리핀을 배반하고 도망치다 라벨 마을에 도착한다. 라벨은 광산 사고로 대부분의 남자가 죽고 여자만 남은 마을이다. 드라마는 로이를 잡으려는 프랭크의 추격과 프랭크로부터 라벨 마을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큰 얼개로 한다. 여기까지는 별 특별할 게 없다. 그런데 〈그 땅에는 신이 없다〉는 조금 더 나아간다. 드라마는 왜 라벨 마을이 프랭크의 폭력을 막아내야 하는지를 몇몇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넷플릭스 드라마 〈그 땅에는 신이 없다〉 스틸컷.  ⓒ넷플릭스


  첫 번째는 서로를 존중하는 로이와 앨리스의 관계다. 결혼하는 남편마다 죽는 앨리스는 마을 사람으로부터 모든 불행한 일이 다 그녀 때문이라 손가락질받는다. 하지만 로이는 앨리스에 대한 마을 사람의 평가가 아닌 그녀의 내면을 바라본다. 앨리스도 휴식과 몸 숨길 곳을 필요로 했던 로이에게 돌봄을 제공한다. 로이는 아버지가 부재했던 앨리스의 인디언 아들 트러키에게 말 타기와 총 쏘기를 가르쳐주고, 앨리스는 글을 읽지 못하는 로이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들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서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제공하며 단단한 관계를 맺는다.


  보안관보 화이티 윈과 흑인 소녀 루이즈, 양복을 입고 다니는 여자 매기와 창녀 출신의 선생 캘리넌의 사랑도 있다. 즉 〈그 땅에는 신이 없다〉는 단순히 ‘악당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자’고 말하지 않는다. 라벨 마을이 소중한 사랑을 품고 있는 장소임을 보여줌으로써 악당에 대항하는 당위성을 확립한다. 편견과 낙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이들의 사랑만으로도 목숨을 걸고 마을을 지킬 이유는 충분하다.


  1870년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하는 〈뉴스 오브 더 월드〉도 비슷하다. 남북전쟁에 참여했던 제퍼슨 카일 키드 대위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뉴스를 읽어주는 일로 생계를 연명한다. 그러던 중 인디언 가족에게 양육된 백인 소녀 조해나를 만난다. 키드는 그녀를 가족의 품에 데려다 주기로 한다.


넷플릭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 스틸컷. ⓒ넷플릭스


  그러나 키드와 조해나는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남북전쟁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텍사스의 가난한 백인들은 키드와 조해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키드가 뉴스에 이야기를 담아 전달함으로써 텍사스에 잔존하는 불평등한 관계에 균열을 내는 것도 미운털이 박힌 이유다. 키드는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조해나에게 안전한 삶과 웃음을 되돌려준다는 영화의 결말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새로운 자극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익숙한 이야기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넷플릭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스틸컷. ⓒ넷플릭스


  6개의 이야기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은 대개 카우보이 혹은 그와 유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웅장한 등장과 퇴장, 운명적인 도전, 비장한 전투는 없다. 대신 우연적이고 허무한 죽음만 있다. 잘났건 못났건 어떤 사연을 가졌건 카우보이 혹은 그와 유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는다. 그들의 삶은 ‘서사 없음’을 조건으로 하는 블랙코미디로 전시된다. 코엔 형제가 허무한 삶에 건네는 진지한 농담은 관객에게 엄청난 몰입감과 정지의 순간을 선사한다. 코엔 형제는 경지에 올라섰다.


  세 작품은 때로는 비슷하게,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서부극의 장르적 전통을 이었다. 폭력적이고 멍청한 백인 남성의 서커스에 불과했던 서부극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울림, 반추의 계기를 제공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윤리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변모했다. 장르영화의 문법은 고루하지만, 그 문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종종 새로운 영화적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대중영화, 상업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 장르영화의 어설픈 구분이 여전히 횡행하는 지금, 세 작품이 보여준 ‘장르영화’로서의 서부극의 약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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