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Feb 28. 2021

학원 로맨스물은 어쩌다 범죄물이 되었나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2020)

  학원 로맨스물에는 공식이 있다. 주인공은 탈선하는 학생과 모두가 우러러보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은 학생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은 서로의 공허함을 알아보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함께 일탈을 즐기기도 한다. 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물건을 훔치는 게 좋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학원 로맨스물에서 이 정도 일탈은 귀엽게 여겨진다. 이것이 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독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은 끝내 자신들이 건설한 세계와 일반 세계를 적당히 화해시킨다. 그러면 학원 로맨스물의 서사가 완결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이 특이한 건, 학원 로맨스물의 필수요소인 일탈이 중범죄 수준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오지수(김동희 배우)와 배규리(박주현 배우)는 담배를 피우거나 싸구려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오지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다. 배규리는 우연히 그의 비밀을 알게 되고 오지수의 범죄에 합류한다. 혼자 힘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오지수와 부모의 압박에 숨 막힐 것 같은 배규리는 그렇게 친구, 연인 혹은 공범이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스틸컷 ⓒ넷플릭스

  우리는 고등학생이 포주라는 ‘파격적 소재’가 아닌 무엇이 학원 로맨스물의 일탈을 중범죄 수준까지 만들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돈이 최고의 목적인 자본주의적 이성은 윤리를 하찮게 여긴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공허함을 가진 두 청소년의 일탈이 조직적 성매매가 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돈만 있으면 대접받는 사회에서 어떻게 우정·사랑을 쌓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부자가 되면 성공한 삶이듯,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더라도 친구·연인이 되었다면 그건 성공한 관계다. 학원 로맨스물과 범죄물의 경계가 흐릿해진 〈인간수업〉이 의미심장해지는 건 이 지점에서다.


  장르물의 경계가 명확할 필요는 없지만, 학원 로맨스물과 범죄물이 뒤섞이는 건 좀 께름칙하다. 그나마 이 께름칙함도 조만간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