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Jul 09. 2021

'비행' 청소년, 관계에 목마른 우리 모두의 거울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2021)

  18살 세진은 수없이 자해 시도를 하는 여고생이다. 그녀의 팔에는 자해의 흔적이 가득하다. 세진은 자해의 통증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것 말고 세진이 생(生)을 느끼는 방법은 없다. 그러던 중 세진이 임신을 한다. 상대는 학교 선생님이다. 성교육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세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무도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세진에게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그 각서가 세진의 임신을 ‘문제’로 만든다. 이제 세진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이 과정을 좇는다.


  가출한 지 4년이 넘은 주영은 세진의 처지를 한눈에 알아본다. 임신과 가출은 둘 다 비행(非行)의 증거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같다. 비슷한 ‘문제’를 가진 세진과 주영은 금세 가까워진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남자 둘이 끼어든다. 그들은 세진을 돕기 위해 많은 일을 해주기도 하지만, 세진과 주영을 유흥업소 사장에게 넘긴 후 몰래 돈을 받기도 한다. 사실을 알게 된 세진과 주영은 화를 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무차별적인 폭력이었다. 남자들이 떠난 후, 피나고 멍든 얼굴의 세진이 주영에게 말한다. 이제 여기서 갈라서자고.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주영은 남자들의 강요에 못 이겨 돌로 세진을 내리치며 “아파요”라고 말했다. 주영은 세진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출한 10대 여성 둘이 장기적 우정을 쌓기에는 그들이 발 딛고 있는 토대가 너무 연약하다. 같은 아픔을 느끼는 세진과 주영이 서로를 위로해주며 버티기에 세상은 너무 차갑다. 둘이 구축한 관계의 온기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금세 사라져버린다. 가능한 건 자기 생존에 대한 몰두뿐이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건 사치다.


  주영과 헤어진 세진은 청소년 상담사를 만난다. 그녀의 팔은 칼로 자해한 상흔이 가득한 세진의 팔과 비슷하다. 그녀의 존재는 세진에게도 밝은 미래가 찾아올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그녀는 세진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 부부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부부는 세진을 정성껏 돌본다. 하지만 세진이 유산하자 모든 게 멈춘다.


  세진과 같은 과거를 지닌 상담사는 과거의 삶을 부정하고 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세진의 고통스러운 현재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한 자신의 현재에만 관심이 있다. 그녀와 세진 사이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한편 부부 역시 세진이 아닌 세진이 낳을 아이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세진이 유산하자 세진을 걱정하는 대신 아이가 사라졌음에 절망한다. 상담사와 부부는 세진을 또 한 번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킨다. 결국 세진은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전작 〈박화영〉(2018)에 이어 이환 감독은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도 10대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환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1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화두는 관계에 목마른 우리 모두의 위태로운 실존이다. 벼랑 끝에 몰린 10대의 삶은 그 이야기를 위한 소재다.*


  〈박화영〉은 남에게 퍼줌으로써만 유지되는 관계의 참혹한 민낯을 보여줬다. 〈어른들은 몰라요〉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박화영이 관계 맺기에 실패했듯, 세진 역시 관계 맺기에 실패한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끝내 서로를 보듬어줄 관계를 맺지 못하고 혼자 남겨진다. 간절히 관계 맺기를 원했음에도 그랬다. 바로 여기서, 두 영화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박화영과 세진은 관계의 온기에 목마른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이는 이환 감독이 10대의 삶을 자극적으로 전시해 소재주의적으로 환원한다는 비판을 가능케 하는 지점일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준석은 로버트 드 니로가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