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법

초음파 기술 연마 기록

by 정상연

"만약 당신에게 낯선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면, 그 마법을 안 쓰고 배기겠는가?"

한의원 진료실에서 내가 매번 환자들에게 '초음파'를 들이대는 이유다.


피부 너머 근육과 인대, 그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은 의사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의무다.

하지만 이 '마법의 안경'을 제대로 쓰기까지, 나는 꼬박 2년을 '초린이(초음파 어린이)'로 살며 눈물겨운 수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1. 모든 기술 연마의 기본은 이론 공부

용감하게 바로 초음파를 환자분에게 갖다 대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나는 머리에 지식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 섣부른 행위들은 자제했다.


대신에 해부학 교과서를 다시 펴서 혈관부터 다시 공부했다.

대학교 때 줄줄이 외웠던 내용이고 심지어 임상을 하고 있는 현역이었음에도,

아리까리하게 기억하고있던 내용들이 많아서 다시 제대로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초음파 기계의 원리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엔지니어들이 알아서 훌륭하게 만들었겠지만, 무슨 원리로 이렇게 대단한 것이 탄생했는지 꼭 알아야겠더라.

내가 원래 물리학을 좋아했던지라 초음파 기계 속 전자공학과 파장에 대해 재밌게 배웠다.

결론은 천재 공학 박사님들 짱짱맨!!


2. 이어서 실습 수업을 시작하다.

나름 풍부해진 머릿속 지식을 토대로 수업을 들으려고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군중 심리를 따라서 한의사들이 많이 선택한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초음파 초고수 한의사께서 운영하는 사이트였는데, 강의료만 한 300만 원은 쓴 것 같았다.

(배움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데, 비용에도 자비가 없었다.)


동영상을 통해 배우니 책보다 더 도움이 된 것은 물론 인터넷 시대에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초음파 초고수 한의사님 정말 부러웠고, 지금도 부럽네요.


책과 동영상으로 배웠다고 해도 직접 살을 맞대며 실습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또 여기저기 수소문을 통해 초보들만을 위한 초음파 실습 강의를 찾아보았다.

충남 계룡, 서울 목동, 서울 장충동, 서울 역삼동, 서울 양재동, 서울 상일동 등등

어린아이에게 구구단을 알려주는 수준의 실습 강의들을 모두 찾아가서 수강했다.


실습 강의를 가면 나는 정말 집요하게 강사분들을 괴롭혔다.

수강생들이 비웃을만한 질문도 망설이지 않고 하면서 최대한 뽕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다.

어찌하겠는가. '초린이'에서 벗어나려면 창피함은 무릅써야지.


와이프가 초음파사인 친구에게 부탁하여, 1:1 개인 교습도 받았다.

실습 모델은 내 와이프.

아내의 배 위로 프로브를 문지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초음파 화면을 응시했다.


역시 초음파사분에게 배우니 실력이 팍팍 늘었다.

그래서 초음파에 관심있는 한의사 2분을 더 모집하여,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음파사분을 모셔서 실습을 이어나갔다.


역시 전국 1등 초음파사 선생님은 달랐다.

수업료도 엄청 비쌌다.

2주에 한 번씩 1년간 초음파 실습을 하며 도제식 교육의 정수를 맛보았다.


3. 결국 실력은 실전에서 길러진다.

나는 도제식 실습을 시작하면서부터 한의원에서 환자분들에게 초음파 진단기계를 썼다.

엄청 능숙한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에 대해 거짓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표정과 분위기로 '고수의 아우라'를 풍기려 애썼을 뿐이다.


진료가 끝난 후에는 환자분을 보면서 의문점이 들었던 부분들을 모아서 다시 공부했다.

유튜브도 찾아보고,

전국 1등 초음파사 선생님께 카톡으로 여쭤보고,

같이 공부하는 한의사 선생님들과 논의도 하면서

진료실에서 발생한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갔다.


이렇게 실력을 계속 향상 시키다보면 자신감이 차오르는데,

며칠 지나서 처음 보는 케이스의 환자분을 만나면

낯선 암호를 해독해야하는 정보부 햇병아리 군인이 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자괴감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왜 이렇게 사람의 몸은 복잡하고 변이가 많은거야.'

'초음파 기계 성능이 별로인가.'

'아니, 내 머리 성능이 별로인가.'


이렇게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진료실에 환자분이 들어오면,

금세 근엄하고 영민한 표정을 진채 초음파로 환자분의 몸을 살펴본다.


위의 과정을 겪는 시간이 대략 2년 정도 지나면, 적어도 돌팔이는 면하는 수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예리한 진단을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게되는데, 이때부터는 재미있다.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하는 느낌이다.


미친 소리 같지만 초음파를 안 대도 환자의 몸속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그 오만함은 낯선 케이스를 만나는 순간 여지없이 깨지지만 말이다.

오늘도 나는 겸손하게 책을 편다.

기술자로 산다는 건, 평생 '정진'이라는 굴레를 기쁘게 짊어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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