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학생을 싸움으로 이긴 범생이

두려움과 섣부른 판단의 실체

by 정상연

중학교 2학년 시절 이야기이다.

3월,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이 한 반에 모였다.

누구는 겨울 방학 동안 키가 부쩍 커서 나타났고, 누구는 목소리가 굵어져서 등장했다.

더 이상 초딩의 귀여움은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중2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반에는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남자 아이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거친 아이들과 몰려다녔던 그 아이는 학기 초부터 반에서 그 존재감을 발휘했다.

힘이 약해보이는 아이들을 차례차례 건드리며 괴롭혔기 때문이다.


어제 영수의 뺨을 때렸다면, 오늘은 영호의 돈을 뺏고, 내일은 영식이가 괴롭힘을 당할 차례가 돌아오는 식이었다.

다행히 나는 반장을 맡은 덕에 '괴롭힘 순번'에서 뒤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직감했다. 나 역시 그 폭풍을 피해 갈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그저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며 폭풍전야의 시간을 보냈다.


3월 하순에 이르러 결국 내 차례가 왔다.

쉬는 시간에 그 친구가 괜히 나한테 시비를 걸어왔다.

반 아이들 모두 '반장까지 괴롭힘을 당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나를 측은히 쳐다보았다.


그의 시비가 길어지면서 쉬는 시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수업은 무서운 선생님이 칼같이 시간을 맞춰서 들어오신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는 바로 잔머리를 굴렸다.

'내가 선제 공격을 하면 적당한 때에 선생님이 들어와서 말려주시겠지.'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아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당황한 그 친구는 넘어져서 내 주먹세례를 받았다.

솜사탕 같은 타격감이었을 테지만, 난생처음 자신에게 달려드는 상대를 마주한 녀석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내 예상대로 다음 수업 선생님이 교실에 바로 들어오셨고

선생님의 불호령으로 싸움은 금세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와 일진 그 친구는 수업 내내 교실 뒤에서 기합을 받았다.

나는 '다음 쉬는 시간에는 내 팔 하나는 부러지겠구나.'라는 걱정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반장이고 먼저 주먹을 휘둘렀으니까 사과는 하자고 생각을 했고

다음 쉬는 시간에 바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녀석이 나를 마치 '종로의 김두한'이라도 보듯 어려워하는 게 아닌가.

나의 의도치 않은 '사기 행세'에 녀석은 내 완력과 인품 모두에 압도당해 버린 모양이었다.


그 사건 덕분에 나는 중학교 2학년 내내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고,

우리 반에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3학년이 되어 밑천이 드러나는 바람에 나는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겁을 줘봤던 사람으로서,

살면서 어떠한 장애물을 맞닥뜨려도 거기서 파생된 공포와 걱정이 과대 포장되었음을 잘 안다.

아무리 거대해 보여도 막상 껍질을 까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섣부른 판단으로인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 일진 학생이 다음 쉬는 시간에 나와 정식으로 결투를 벌였으면 내 실체를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짧은 판단으로 나를 '싸움의 왕'으로 인정해 버렸고, 1년 동안 자진해서 내 수하(?)로 들어왔다.


그래서 함부로 누구를 판단하는 것과 더불어 나 자신을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한다.

누가 뭘 하든 어떠한 일이 벌어지든

그저 오늘 내가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1년 동안 나에게 '악의 없는 사기'를 당했던 그 친구도, 적어도 두 가지 인생 교훈은 얻지 않았을까?

첫째, 실체 없는 두려움에 압도되지 말 것.

둘째, 섣불리 상대를 판단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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