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전투에서 돌아온 그대들에게.
영화 슈렉 2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를 기억하는가?
무시무시한 킬러였던 고양이가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아기 고양이처럼 변신하면, 적들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져 무장을 해제한다.
이때 고양이는 방심한 틈을 타 다시 공격을 가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나는 귀여운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를 보면 관심이 가기는 하더라도 쉽게 경계를 늦추진 않는다.
오직 이 세상에서 나를 무장 해제시키는 포인트는 '흰머리'이다.
유독 흰머리가 성성한 이를 마주하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흰머리는 다양한 이유로 자라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멜라닌세포의 퇴화가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쉽게 말해 우리가 늙었다는 것 혹은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결과이다.
흰머리를 감추려 염색을 해도 열흘만 지면 모근 주변으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드러난다.
새로 자란 부분이 오히려 늙어보이는 기이한 모습으로 말이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 수염 등도 하얗게 변하면 진짜 관리하기 번거롭다.
이렇게 서리가 내려앉은 머리를 한 사람을 만나면, 그의 50년 혹은 70년의 시간이 체감이 된다.
아기 때의 보드라운 솜털로 시작해, 청년 시절 굵고 윤기 나는 머리칼로 위세를 떨쳤을 테다.
그리고 이제는 가늘고 빛바랜 흰머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걸어온 인생의 여정을 짐작하고 이해하게 된다.
힘든 시간 잘 버텨왔던 상대가 안쓰럽다.
길고 두터운 고생의 파동 사이에 종종 찾아왔던 좋은 일들로 견뎠을테지.
그렇게 일 년 이년 살다보니 이제 머리에 하얀 꽃이 피었나보다.
멀쩡히 잘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머리가 희끗희끗하면
나는 괜히 눈이 간다. 결국 자연스레 마음도 기운다.
인생이라는 전투에 참전한 개선 용사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한 없이 장한 그들에게 눈물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