빳빳하게 다려낸 아침의 선(禪)

다리미를 든 남자

by 정상연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면서 루틴하게 하는 행동이 있다.

기도? 운동?

아니다. 바로 오늘 입을 와이셔츠를 다리는 일이다.


나도 아침은 바쁘다.

씻고 밥먹고 강아지 산책도 하다보면 시계 바늘은 매정하게 흐른다.

그래서 출근할 때 필요한 셔츠를 전날 다려놓거나, 일주일치 셔츠를 한꺼번에 다려놓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나는 10년 넘도록 셔츠는 당일 아침에 다리는 루틴을 지키고있다.

하루의 시작을 경건하게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인 셈이다.


옷방에서 나와 10년을 함께 한 테팔 다리미에 전원을 켠다.

1분 가량 지나야 다리미가 셔츠의 주름을 없앨 수 있는 적정한 온도에 도달한다.

한때는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던 스팀 기능이 5년 전부터 말썽을 부려 따로 분무기도 마련해놨다.

날씨를 고려해 오늘 입을 셔츠를 고르고 10년간 숙련된 솜씨로 셔츠를 다리기 시작한다.

깃에 힘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옷의 등부분을 다린다.

늘 가운을 입고 일하기 때문에 등쪽은 누구도 보지 않지만, 꼼꼼하게 주름을 펴준다.

그다음은 배쪽 부분이다. 가운 사이로 보이는 영역이라 여기는 분무기까지 뿌려주며 한껏 신경써서 다린다.

마지막은 팔 부분이다. 여기도 일할 때에는 가운 안에 숨어있지만 대충 다려도 된다는 유혹에서 벗어나 정성껏 각을 잡아준다.


뜨거운 열기가 지나간 자리를 손바닥으로 훑다 보면, 문득 잡념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난다. 명상에서 말하는 '선(禪)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생각이 아예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생각에 머물지 않는 상태가 된다.

무심(無心)의 부작용이 있다면, 5분이 지난 줄 알았지만 시간이 두세 배 흘러버려서 지각 위협에 처할 때가 있다는 것?


다림질을 마친 셔츠를 걸치면 마치 새 옷을 입은 듯 몸과 마음이 팽팽하게 깨어난다.

주말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날 때면 기어들어 가던 목소리가,

바짝 다린 셔츠를 입은 출근길에는 제법 우렁찬 인사가 되어 터져 나온다.


오늘도 나는 빳빳하게 세운 셔츠 깃만큼이나 선명한 마음으로 문밖을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흰머리를 볼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