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의 남은 시간

마른행주를 쥐어짜듯, 너와의 시간을 축적하는 일

by 정상연

우리집에는 초롱이라는 강아지가 있다.

10살이 되었으니 강아지가 아니라 '개'라고 불러야겠지만,

나에겐 한결같이 강아지이다.


내가 제주도에 이사했을 때 분양받았던 아이.

서귀포 위미리라는 따뜻한 동네에서 태어난 초롱이는 행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미에게 혼날 때도 많았지만, 함께 태어난 4형제들과 제주도 숲을 뛰어다니며 건강하게 자랐다고 했다.


어느 정도 강아지 구실을 하게 되었을 때 이웃집으로 입양 보내졌는데,

곧 파양을 당했다.

그때 초롱이는 알았을까? 자신이 한 번 버려졌다는 사실을.


그리고나서 내가 그 아이를 두 번째로 입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초롱이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원래의 이름 '초롱이' 그대로 불러주었다.

다행히도 그 아이와 나는 금방 마음을 텄고,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10년이 흘렀다.

초롱이 얼굴에는 흰 털 지분이 꽤 늘었고, 이빨도 몇 개는 썩어서 작년에 뺐다.

아직도 간식과 산책을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같이 장난칠 때 관찰할 수 있는 점프력이나 유연성 등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초롱이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미 절반 이상 소모되었다. 통계적인 수치를 빌리지 않더라도, 녀석이 내 곁에서 숨 쉴 수 있는 날이 지난 10년보다 짧으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쏜살같이 지나간 과거보다 더 짧은 미래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초롱이와 함께 할 때 불현듯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 기분 좋은 숨소리, 포근한 목덜미 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줄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는 헛똑똑한 인간의 두려움 섞인 슬픔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아이를 집에 혼자둬야할 때가 되면, '정신 차려라!'라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최대한 초롱이를 데리고 외출한다.

집에서 티브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울 때에는 옆에서 시무룩하게 엎드려있는 초롱이에게 장난을 걸어준다.

장난감을 눈 앞에 흔들어주면 그 아이는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는듯이 나랑 재밌게 놀기 시작한다.


몇 년 후에는 눈물나게 그리워할 이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게끔

마른행주를 쥐어짜는 심정으로 그 아이와의 행복을 축적해가고있다.


초롱이는 지금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오늘은 퇴근하고 초롱이가 좋아하는 양재천 징검다리 너머까지 오래 산책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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